텍사스주에 있는 불법 월경자 수용시설. 사진 출처: 미국 세관국경보호국
“그 사람들이 아빠를 붙잡지 않으면 좋겠어요.” “아빠를 내쫓지 않으면 좋겠어요.”
아이들은 연신 스페인어로 아빠, 엄마를 부르며 울부짖었다. 멕시코와의 국경 지대에 있는 미국 세관국경보호국의 수용 시설에서 녹음한 소리다. 탐사보도 매체 <프로퍼블리카>가 18일 공개한 불법 월경자 자녀들의 울음소리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시행하는 부모-자녀 분리 수용 정책의 비정함을 환기시키고 있다. 관리가 “목욕을 시켜주겠다”고 거짓말을 하고 아이를 데려갔다거나, 아이와 떨어지지 않으려고 실성한 사람처럼 몸부림치는 엄마를 봤다는 목격담도 나오고 있다.
불법 월경자는 예외 없이 기소하고, 자녀는 부모와 분리 수용한다는 미국 법무부의 ‘무관용 정책’에 대한 비난이 커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아내인 멜라니아조차 “가슴으로 통치해야 한다”고 비판한 데 이어,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의 부인인 로라 부시도 18일 불법 월경자 자녀 수용 시설을 2차대전 때 미국 본토에서 일본인들을 구금한 시설에 빗댔다. 이들 외에도 힐러리 클린턴, 미셸 오바마, 로잘린 카터까지 포함해 전·현직 미국 대통령 부인 5명이 일제히 비판 입장을 내놨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주자 자녀들에 대한 각별한 우려”를 표했다. 마이클 헤이든 전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아우슈비츠 수용소 사진을 트위터에 올린 데 이어 <시엔엔>(CNN)에 나와, 트럼프 행정부의 처사는 “약자 그룹에 대한 처벌”이라는 면에서 나치즘을 떠올리게 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텍사스주 수용시설에서 부모와 격리돼 있는 아이들. 위 사진 속 성인들처럼 철제 펜스 안에 갇혀있다고 현장을 둘러본 미국 기자들이 전했다. 사진 출처: 미국 세관국경보호국
세관국경보호국이 공개한 시설의 실태도 비난 여론에 기름을 붓고 있다. 기자들과 민주당 의원들은 촬영이 금지된 가운데 텍사스주 우르술라 수용소를 둘러봤다. <에이피>(AP) 통신은 어린이들이 20명 단위로 철제 펜스에 갇혀 있으며, 알루미늄 포일이 이불로 지급됐다고 전했다. 기자들은 월경자들이 이를 “개집”이라고 부른다고 전했다. 피터 웰치 의원은 “감옥과 다를 바 없다”고 밝혔다.
우르술라 수용 시설에서는 1100명이 수용돼 있다. 이들은 부모와 격리된 어린이들, 자녀를 동반하지 않은 성인들, 자녀와 함께 있는 성인들로 각각 분리 수용됐다. 어린이 200명이 부모로부터 떨어져 수용돼 있다. 이곳에서 100㎞가량 떨어진 옛 월마트 창고에는 4월19일~5월31일에 국경을 넘다 체포돼 부모와 격리된 미성년자 1500명이 갇혀 있다. 이들의 부모가 언제까지 처벌 절차를 밟게 될지, 아이들이 언제 다시 부모를 만날지는 불확실하다. 세관국경보호국은 비난 여론에도 “5살 미만 아이는 격리시키지 않는다”는 입장만 밝혔다.
전문가들은 아이들의 심각한 트라우마를 경고한다. 미국 소아과학회는 “가족과의 이별 등 심각한 스트레스는 아이의 뇌 구조를 파괴해 평생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유발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을 난민 캠프로 만들 순 없다”며 부모-자녀 분리를 철회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그는 “민주당이 가족을 억지로 떼놓고 있다”며, 국경 장벽 설치 등 자신의 반이민 정책에 반대하는 민주당에 책임을 덮어씌웠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