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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미국·중남미

소토마요르 “70여년 전 판결 같다” 이례적 동료 대법관 비판

등록 2018-06-27 13:47수정 2018-06-27 20:27

미 ‘이슬람 5개국’ 출신자 입국 금지 합헌 판결
소니아 소토마요르 연방대법관 소수의견 낭독
“역사는 오도된 결정을 호의적으로 보지 않을 것”
“2차대전 때 일본계 강제수용 판결 논리와 같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슬람 5개국’(이란·예멘·리비아·소말리아·시리아) 시민들의 입국 금지를 규정한 행정명령 위헌 사건에서 26일 연방대법원이 자신의 손을 들어주자 “와우”라고 반응했다. 연방대법원의 보수-진보 지형(5 대 4)이 그대로 반영된 이번 판결은 주요 판례로 남을 것으로 확실시된다. 어느 때보다 신랄한 소수의견이 제출된 점도 기록에 남을 전망이다.

미국 언론들은 선고 법정에서 20여분간 진행된 소니아 소토마요르 대법관의 소수의견 낭독에도 주목했다. 그는 법리와 함께 ‘미국의 가치’ 등 상식과 역사를 강조하면서 다수의견을 맹공격했다. “역사는 오늘 이 법원의 오도된 결정을 호의적으로 바라보지 않을 것이며, 그래서도 안 된다”고 했다.

소토마요르 대법관은 우선 이번 판결이 종교의 자유에 정면으로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은 종교적 자유의 약속에 기반을 두고 건설된 나라다. 미국의 건설자들은 수정헌법 제1조에 종교적 중립성의 원칙을 넣으면서 이런 핵심적 약속을 지켰다”고 밝혔다. 하지만 연방대법원은 “기본적 원칙을 수호”하는 데 실패했다고 비판했다. <뉴욕 타임스>는 소토마요르 대법관이 미국의 ‘건국 가치’를 꺼내자 방청석이 숙연해졌다고 전했다.

소토마요르 대법관은 이슬람 국가 시민들의 입국을 금지하는 행정명령은 국가 안보를 허울로 내세운 이슬람 혐오일 뿐이라고 밝혔다. 특히 무슬림들에 대한 혐오와 입국 금지의 필요성을 내세운 트럼프 대통령의 트위터 내용을 10여 차례 인용하는 방식으로 ‘근거’를 들이댔다. “이슬람은 우리를 혐오한다”, “우리 나라에 오는 무슬림들은 문제가 있다”는 등의 내용이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슬람 신앙에 대한 명백한 적대감”을 표출해왔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번 행정명령과 판결을 2차대전 당시 적성국 출신이라는 이유로 미국에 사는 일본인들을 대거 구금한 사건에 빗댔다. 11만명의 일본계 시민을 네바다주 사막 등에 강제 수용한 이 사건은 미국 땅에서 벌어진 중대한 인권 침해 사건으로 각인돼 있다. 소토마요르 대법관은 “정부는 이곳(연방대법원)에서 모호한 국가 안보를 들먹이며 이를 정당화했다”, “이곳에서 위험한 고정관념들, 그 중에서도 특정 그룹은 (미국 사회로의) 동화 능력이 없고 미국에 해를 끼치려는 열망을 갖고 있을 것이라는 가정이 배제의 뿌리가 됐다”고 역설했다.

2차대전 당시 강제수용된 일본계 미국인들. 일본계 강제수용은 ‘미국의 수치’로 불린다.
2차대전 당시 강제수용된 일본계 미국인들. 일본계 강제수용은 ‘미국의 수치’로 불린다.
특히 일본계 강제 수용을 추인한 1944년의 연방대법원 판결과 이번 판결은 다르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는 “법원이 고레마쓰 사건 판결의 기반이 된, 똑같은 위험한 논리를 다시 끌어들여 하나의 ‘중대하게 잘못된’ 결정을 다른 결정으로 대체했다”고 주장했다. ‘고레마쓰 사건’은 일본계 미국인 프레드 고레마쓰가 강제 수용이 부당하다며 낸 위헌 소송에서 연방대법원이 국가 안보를 이유로 정부 손을 들어준 사건으로, 미국 사법사의 중대 오점으로 불린다. 소토마요르 대법관은 “배척당하는 그룹에 대한 적대감에서 촉발된 차별적 정책”이 “국가 안보라는 얄팍한 주장” 아래 시행되고 있다면서, 연방대법원은 이를 “맹목적으로 허용했다”고 비난했다.

이슬람 국가 출신의 입국 금지 사건은 이처럼 74년 전 판결을 둘러싼 논란으로까지 번졌다. 존 로버츠 연방대법원장 등 다수의견을 제출한 이들은 ‘고레마쓰 사건’은 이번 사건과 무관하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일본계 미국 시민들을 ‘출신 성분’만을 이유로 강제 수용한 것과 특정 국가 출신들의 입국을 허가하지 않는 “표면적으로 중립적인 정책”은 다르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고레마쓰 사건’ 판결 자체는 “중대하게 잘못된” 것이며 위헌적이라는 게 이미 판명됐다고 했다.

하지만 소토마요르 대법관은 이번 판결도 여전히 “중대하게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최근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의 아내인 로라 부시는 <워싱턴 포스트> 기고에서 불법 월경자 부모-자녀 격리 정책을 일본계 강제 수용에 빗대며 이 사건을 “미국 역사상 가장 부끄러운” 일이라고 했다.

헌법적 쟁점을 다루는 미국 연방대법원 사건에서는 다수의견과 소수의견 사이에 치열한 공방이 오간다. 하지만 이 정도로 신랄한 다수의견 비판 사례는 쉽게 찾기 어렵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때인 2009년 연방대법관이 된 소토마요르는 완전한 미국 시민권이 없는 자치령 푸에르토리코 출신으로 ‘아메리칸 드림’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최초의 라틴계 여성 연방대법관이다. 2차대전 때 미국으로 건너온 그의 아버지는 영어도 할 줄 몰랐다. 그는 “개인적 경험이 판사들이 살피려는 사실을 선택하는 데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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