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배넌(오른쪽)이 지난해 4월12일 백악관 기자회견장에 입장하고 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던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가 전장을 미국에서 유럽으로 옮겨 “우익 혁명을 일으키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노골적 ‘분열 공작’의 무대로 최근 극우 정당들의 기세를 올리는 유럽을 지목한 것이다. 배넌은 21일 <데일리 비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내년 5월 유럽의회 선거를 기점으로 우익 포퓰리즘 운동을 일으킬 재단 ‘더 무브먼트’를 설립하겠다”고 말했다.
배넌이 만들겠다는 재단은 우파 싱크탱크로서 우익 단체를 연구하고, 데이터를 관리하며, 여론 조사를 벌인다. 배넌은 재단의 활동 타깃을 10개월 앞으로 다가온 유럽의회 선거로 설정하고, 극우 성향 의원을 전체의 3분의 1 이상 포진시켜 유럽 내 포퓰리즘 돌풍을 일으키겠다는 포부를 비쳤다. 그는 “포퓰리즘과 다보스당(세계화를 상징) 사이의 진정한 첫 대립”이라며 “유럽에 아주 중요한 순간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배넌은 재단 설립을 위해 지난 1년간 나이절 패라지 전 영국 독립당 대표, 프랑스·헝가리 극우 정치인들과 협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특히 2016년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결정을 이끌어낸 극우 단체가 캠페인에 투입한 자금이 단 700만파운드(103억4300만원)였다는 사실에 고무됐다. 배넌은 최근 반이민 정서를 건드려 극우 세력 확대에 나선 마테오 살비니 이탈리아 내무장관이 향후 ‘더 무브먼트’를 따를 동반자 모델이라고 짚으며, “이탈리아는 현대 정치의 심장이다. 이탈리아에서 작동한다는 건 어디서나 가능하다는 뜻”이라고 강조했다. 재단 본부는 벨기에 브뤼셀에 세워진다. 배넌은 11월 미국 중간선거가 끝나면 브뤼셀에 머물면서 재단 운영에 열중할 계획이다.
배넌은 백악관 입성 후 트럼프 행정부의 실세이자 두뇌로 묘사되며 ‘트럼프의 남자’라는 별명까지 붙었으나, 백악관 내부 권력 투쟁으로 지난해 8월 축출됐다. 이후 몸담았던 극우 매체 <브레이트바트>에서도 물러났으며, 백인 민족주의를 표방하는 우파 단체들과 연계해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배넌은 재단 ‘더 무브먼트’를 억만장자 조지 소로스의 ‘오픈 소사이어티 재단’의 대안으로 제시하고 싶다고 밝혔다. 오픈 소사이어티 재단은 1984년 설립된 진보적 재단으로, 소로스는 320억달러(36조3360억원)를 여기에 기부했다.
김미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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