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플로리다주 탬파에서 7월31일 열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지지자 집회에서 한 참가자가 딥스테이트 음모론을 전파하는 ‘큐’(Q)의 추종자임을 밝히는 ‘큐어넌’(QAnon) 셔츠를 입고는 트럼프에 비판적인 <시엔엔>을 규탄하고 있다. 탬파/A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대한 특별검사의 수사망이 조여오는 가운데, 이를 비난하는 ‘딥 스테이트’ 음모론이 그의 지지자들 사이에서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나라의 심부’ 또는 ‘나라 안의 나라’라는 뜻의 딥 스테이트(deep state)는 정부 안에 깊숙이 뿌리박힌, 강력하지만 실체를 드러내지 않는 세력을 가정한 표현이다. 정권이 바뀌어도 살아남아 기득권 세력의 이익을 추구하는 비밀스런 집단이 있다는 게 딥 스테이트 음모론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5월23일 트위터를 통해 “범죄적인 딥 스테이트 주변에서 돌아가는 일들을 보라. 그들은 러시아와의 가짜 공모를 추적하고, 사기를 친다. 이 나라가 전에 볼 수 없던 큰 스파이 스캔들로 귀결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 대선에 러시아가 개입해 자신의 당선에 영향을 끼쳤다는 ‘러시아 스캔들’에 대한 수사를 딥 스테이트가 조종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자신을 사악한 딥 스테이트 집단에 맞서는 전사로 치부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언급은 지난 연말연시부터 트럼프 대통령 쪽이 띄우기 시작한 음모론을 본격화시킨 계기가 됐다. 트럼프 대통령의 아들 트럼프 주니어는 지난 1월19일 트위터에서 “민주당원 및 딥 스테이트 정부 관료들은 자신들을 보호하려고 온갖 일을 저지르며, 영향력을 이용해 정치적 반대자들을 공격한다”고 비난했다.
최근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자들도 이 깃발 아래에 모이면서 음모론이 위력을 더해 가고 있다. 지난달 31일 플로리다주 탬파에서 열린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 집회에는 ‘우리는 큐(Q)’ 혹은 ‘큐어넌(QAnon·큐와 익명을 뜻하는 ‘어나니머스’의 합성어)’이라고 적은 손팻말을 들거나, 그런 문구를 쓴 티셔츠를 입은 이들이 몰려들었다.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의 플로리다주 탬파 집회에서 한 참가자가 ‘Q’라고 쓴 손팻말을 들고 있다.
‘큐’는 지난해 가을부터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하는 극우 백인민족주의 온라인 공간에서 “딥 스테이트의 음모를 밝힌다”며 비밀 정보를 폭로해온 익명의 인물 또는 단체다. ‘큐’는 정부에서 암약하면서 트럼프 행정부와 그 지지자들을 노리는 더러운 음모를 꾸미는 ‘국제 관료 집단’의 실체를 폭로하는 정부 내부 인사를 자처한다. 미국 에너지부의 최고 기밀 취급 등급(Q)에서 착안한 명칭이다. ‘큐’는 트럼프 행정부를 정부, 산업, 언론 등을 접수한 ‘반 미국적’ 무리에 맞서 싸우는 정복자로 묘사한다. 이에 열광하는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은 ‘큐’의 메시지를 유튜브, 페이스북, 트위터를 통해 열심히 전파하고 있다.
음모론 확산의 부작용도 발생하고 있다. 지난 6월 한 무장 시민이 장갑차를 몰고 콜로라도강의 후버댐에서 ‘큐’가 부여한 임무를 수행중이라며 경찰과 대치했다. 그는 힐러리 클린턴이 국무장관으로 재직하면서 개인 이메일을 공무에 사용한 사건을 조사한 연방수사국(FBI) 요원에 대한 법무부 감찰 서류를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그 서류는 전날 공개됐는데도, ‘큐’의 추종자들은 다른 감춰진 서류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큐’ 추종자들을 위한 앱 ‘큐 드롭스’는 지난 4월 애플 앱스토어에서 가장 많이 내려받은 앱 10위 안에 들었고, 3월에 출범한 큐어넌닷펍(Qanon.pub) 사이트는 한 달간 700만명이 방문했다.
이런 음모론은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에 큰 기여를 한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 등이 부추겨왔다. 이들은 세계화란 미국 엘리트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정부를 무력화하려는 음모라고 주장한다.
정의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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