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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미국·중남미

‘거친 입’ 트럼프, 최고 ‘악녀’의 도전에 직면하다

등록 2018-08-15 12:07수정 2018-08-15 21:25

리얼리티 쇼의 ‘악녀’ 매니골트, 스승 트럼프와 이전투구
백악관 국장서 해임뒤 트럼프의 인종주의 발언 등 폭로
트럼프 “매니골트는 개” “밑바닥 인생” 등 격한 비난
2013년 한 행사장에서 만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오마로사 매니골트.
2013년 한 행사장에서 만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오마로사 매니골트.
미국 최고의 ‘거친 입’ 과 최고 ‘악녀’의 대결.

거친 입에다가 비판에 아랑곳하지 않는 ‘멘탈 갑’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최고 ‘악녀’의 도전에 직면했다. 지난해 말 백악관 대외협력국장에서 해임된 흑인 여성 오마로사 매니골트(43)가 트럼프 대통령과의 관계 및 자신의 백악관 생활을 담은 책 <혼란>(Unhinged)를 출간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인종차별적 발언을 일삼았다고 폭로한 것이다.

트럼프는 매니골트를 “개”, “밑바닥 인생”, “낙오자”, “괴짜이고 미쳤다” 등의 수위 높은 거친 표현으로 비난하고 있다. 매니골트 역시 “도널드 트럼프에게 협박당하지 않을 것”이라며 결사항전 의지를 보이고 있다.

매니골트는 트럼프 대통령이 진행한 리얼리티 쇼에 출연하며 ‘악녀’로 명성을 얻은 그의 ‘제자’라 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특기를 전수받아 구사하는 제자로한테 유례없는 도전에 직면한 셈이다.

매니골트는 1990년대 말 앨 고어 당시 부통령을 위해 일하다 석연치 않은 이유로 퇴출됐다. 그에 대해 고어 전 부통령 쪽에서는 ‘최악의 고용’이었다고 평가했으나, 매니골트는 그들이 자신을 존중해주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매니골트의 인생은 트럼프 대통령 쪽으로 전환된다. 2004년 트럼프 대통령이 진행한 인기 리얼리티 쇼 ‘어프렌티스’에 출연하며 대중적 인기를 얻었다. 매니골트는 이 쇼의 게임에서 현란한 말솜씨, 상대의 약점을 잡아 뒤통수 치기, 이간질시키기, 인정사정없이 몰아붙이기, 노골적인 막말하기 등으로 승승장구하며 ‘미국이 증오하는 여성’으로 등극했다. 그는 지난 10일 <피비에스>(PBS) 인터뷰에서 당시 자신은 “트럼프처럼 되고 싶었다”고 말했다. “가난하게 자라서 언젠가는 억만장자가 되고 싶었고, 도널드 트럼프에게 가서 일하고 싶어서 ‘어프렌티스’에 출연해 성공했다”고 했다.

‘어프렌티스’에서 성공한 매니골트는 다른 리얼리티 쇼에도 단골 출연자로 나서 입지를 굳혔다. 여러 프로그램에서 출연진이나 사회자, 제작자를 상대로도 거침없는 특유의 ‘악당 기법’을 구사해 불화를 빚고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티브이가이드>는 2013년 ‘60명의 가장 고약한 텔레비전 악당’ 명단에 그를 포함시켰다. 매니골트는 남성이 자신처럼 행동하면 강하다고 평가받으나, 여성이 그러면 부정적으로 평가받는다며, 자신은 ‘교활한 여성 사업가’일 뿐이라고 했다.

‘어프렌티스’의 출연은 매니골트가 트럼프 대통령과 개인적으로도 친밀한 관계를 맺는 계기가 됐다. 둘은 2010년 리얼리티 쇼를 함께 진행하기도 했다. 매니골트에게 남자 12명이 구애하는 리얼리티 데이트 쇼였다.

매니골트는 2016년 트럼프 대통령의 공화당 대선 후보 출마 때 ‘아프리카계 미국인(흑인) 지원 국장’을 맡으며 선거 캠프에 합류했다. 승승장구해 대통령직 인수위원도 됐고, 결국 백악관에서 고위직을 얻어냈다. 그는 트럼프 행정부의 백악관에서 유일한 고위직 흑인 여성이었다.

매니골트가 백악관의 국장으로 일하던 지난 2017년 2월1일 벤 카슨 주택도시개발장관 지명자와 함께 트럼프 대통령과 회의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매니골트가 백악관의 국장으로 일하던 지난 2017년 2월1일 벤 카슨 주택도시개발장관 지명자와 함께 트럼프 대통령과 회의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정치 입문’ 뒤에도 리얼리티 쇼에서 보여준 특기를 유감없이 발휘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 직후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당선자는) 대선에서 자신에게 투표하지 않은 공화당 내 적들의 명단을 갖고 있다”고 말해 논란을 일으켰다. 2017년 8월 전국흑인언론인협회가 주최한 토론회에서 참석해, 사회자와 토론자들이 자신에 대해서가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만을 묻는다며 고함을 지르고 싸우기도 했다.

2017년 12월13일, 백악관은 전격적으로 매니골트의 사임을 발표했다. 당시 언론들은 존 켈리 비서실장이 그를 해고했다고 보도했으나, 그는 자진해 사임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매니골트의 입장이 바뀌기 시작했다. 지난 2월 한 리얼리티 쇼에 출연해 트럼프 행정부를 비판하며, 자신은 다음 선거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투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2일에는 자신에게 해고 통지를 하는 켈리 비서실장의 말을 녹음한 테이프를 <엔비시>(NBC) 방송을 통해 공개했다.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공개적 도전에 나선 것이다. 녹음 테이프에는 켈리 실장이 “아주 심각한 법적 문제들이 당신한테 험한 쪽으로 흘러가지 않으면 좋겠다”고 말한 것으로 나온다. 매니골트는 관용차를 부당하게 사용했다는 이유로 협박을 받았지만 자신은 잘못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매니골트는 회고록 <혼란> 출간을 발표하며, 트럼프 대통령이 인종차별 발언을 일삼았고, 그 말이 녹음돼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회고록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어프렌티스’에 출연할 당시 ‘N 단어’를 자주 사용했고, 이를 입증할 테이프도 존재한다”고 말했다. ‘N 단어’는 한국어로 ‘검둥이’ 정도의 경멸적 표현인 니그로(negro)나 니거(nigger) 등의 단어를 통칭한다.

트럼프 대통령과 백악관은 격렬히 반응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14일 트위터에를 통해 “미치고, 울부짖는 밑바닥 인생에게 백악관에서 휴식과 일자리를 줄 때, 나는 그것이 잘 안 됐을 것이라고 봤다. 켈리 장군이 그 개를 신속히 자른 것은 잘한 일이다!”라고 밝혔다. 막말로 유명한 트럼프 대통령이지만 특정인을 ‘개’라고까지 지칭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어프렌티스’ 제작자와 통화해 그런 녹음 테이프는 없다는 확인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괴짜이고 미친 오마로사의 특징인 그런 끔찍하고 혐오스런 말을 쓴 적이 없다. 내 사전에는 그런 게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백악관 주변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평소 언행으로 봐, 그런 테이프가 정말 존재하지 않는지 자신할 수 없다는 분위기다. 세라 허커비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N 단어 녹음 테이프’의 존재 여부에 대한 질문에 “어떤 것도 예단할 수 없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 쪽은 법적 대응으로 매니골트에 대한 압박에 나섰다. 매니골트가 선거 캠프에 참여할 때 서명한 비밀 엄수 계약을 위반했다고 법원에 중재를 신청한 것이다. 중재는 양쪽의 합의를 유도해달라고 요청하는 제도다.

미국 언론들은 트럼프 대통령 쪽이 주장하는 비밀 엄수 계약이 있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매니골트는 그런 계약을 한 적이 없다며 “나는 침묵하지 않을 것”이라고 <에이피>(AP) 통신과의 회견에서 말했다.

백악관을 떠난 뒤 리얼리티 쇼 등 연예계에 재등장한 매니골트는 특유의 싸움 기법으로 트럼프 대통령과 대결하며 자신의 명성을 다시 회복하려는 의도도 역력히 보여주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의 이전투구가 자신에게 전혀 밑지는 것이 아님을 의식하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싸움 기법을 터득한 거친 상대를 만난 셈이다. <뉴욕 타임스> 칼럼니스트 프랭크 브루니는 “모방꾼이 스승의 가르침으로 스승을 공격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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