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 이민자들이 19일 콜롬비아와 에콰도르를 잇는 콜롬비아 나리뇨주 파스토의 루미차카 다리 인근 이민국 앞에서 입국 허가를 기다리고 있다. 파스토/AFP 연합뉴스
최악의 경제난 속에서 국가를 ‘탈출’한 베네수엘라 이민이 브라질 북부 주민들과 충돌했다. 이 소동에 브라질 정부는 소수지만 군까지 투입해 사태 수습에 나섰다. 베네수엘라인들의 ‘엑소더스’에 주변국들이 잇따라 국경 빗장을 걸어 잠그며 ‘베네수엘라 위기’가 남미 전역의 위협으로 확대되고 있다.
미셰우 테메르 브라질 대통령은 19일 국방·공공안전·외교 장관 등과 긴급 각료회의를 열고 북부 호라이마주 파카라이마에 최소 60명의 군병력을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갈등의 직접적 계기는 18일 베네수엘라 이민자 캠프가 세워진 이 지역에서 한 이민 남성이 현지인 식당 주인을 때린 사건이었다. 최근 몇 달간 급증한 베네수엘라 이민들에게 적개심을 품어왔던 지역민들은 이민 캠프를 습격해 천막과 소지품 등에 불을 질렀다. 브라질 이주 태스크포스(TF) 대변인은 <아에프페>(AFP) 통신에 “그로 인해 베네수엘라 이민자 1200여명이 강제로 복귀했다”고 밝혔다.
베네수엘라 경제는 ‘21세기 사회주의’를 내세운 우고 차베즈 전 대통령이 2013년 4월 숨진 뒤 급격한 내리막길을 걸었다. 위기의 원인은 원유 가격 하락에 설비 노후화 등으로 생산량 감소가 겹쳤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정부는 생필품과 의약품에 대한 ’가격통제’를 실시했다. 채산을 맞추지 못한 생산업자들이 대거 사업을 접으며, 진열대에 물건이 사라졌다. 곧이어, ‘하이퍼인플레이션’이 시작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7월 베네수엘라의 올해 물가 상승률이 100만%에 달할 것으로 예측했다. <로이터> 통신은 식량 부족으로 베네수엘라인들의 평균 체중은 2016년 8㎏, 2017년 11㎏ 줄었다고 전했다.
19일 호라이마주 파카라이마에서 베네수엘라 이민자 여러 명이 짐가방을 끌고 이민자 캠프로 이동하자 경찰이 서서 이들을 바라보고 있다. 파카라이마/로이터 연합뉴스
유엔(UN)은 2015년부터 베네수엘라 총인구의 7%인 230만명이 본국을 떠나 브라질·칠레·콜롬비아·에콰도르·페루로 향했다고 밝혔다. 베네수엘라와 국경을 맞댄 콜롬비아엔 80만명, 에콰도르엔 올해만 50만명이 입국한 것으로 추정된다. 브라질에선 올 상반기에만 5만6740명이 난민 지위나 임시 거주증을 신청했다. <가디언>은 이를 두고 “남아메리카 역사상 가장 거대한 이주 행렬”이라고 묘사했다. 이 ‘엑소더스’는 최근 2주간 더 심해졌다.
그러자 주변국들이 문을 걸어 잠그기 시작했다. 콜롬비아는 2월부터 베네수엘라 접경 도시 쿠쿠타를 중심으로 불법 이민자를 강력 단속하고 있다. 생필품과 의약품을 살 수 있도록 하루씩 출입을 허용했던 정책도 중단했다. 에콰도르는 20일, 페루는 25일부터 신분증 대신 유효 여권을 소지한 이들의 입국만 허용하고 있다.
정치적 불안은 위기의 또다른 원인이다. 차베즈의 뒤를 이은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은 2013년 권좌에 앉은 뒤 독재 정권의 발판을 마련하는 데 주력했다. 지난 5월 대선에서 승리하며 내년부터 6년을 더 통치하게 됐지만, 미국·유럽연합(EU) 등은 결과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마두로 대통령은 4일 드론을 이용한 암살 위협을 받은 뒤 군 장성과 야당 의원 등 십여명을 잡아들이는 등 공포 정치를 행사할 조짐이다. 18일 연설에선 “침체한 경제를 되살리겠다”는 명목으로 자국 통화를 95% 이상 평가절하하고, 최저임금을 60배 인상하는 무리한 대책을 내놓았다.
이 대책에 대해선 기대보다 우려의 목소리가 더 크게 나온다. 스티브 H 행크 존스홉킨스대 경제학과 교수는 <워싱턴 포스트>에 “베네수엘라 정부가 내놓은 것은 혼란스럽고 모순된 것”이라며 “환율이 일정 기간 변동할 수 있지만, 사람들이 그것(대책)이 모두 ‘사기’임을 알게 된 순간 다시 원래 궤도로 돌아올 것”이라고 꼬집었다.
김미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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