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제 코르네가 28일 세트 시작 전 윗옷을 고쳐 입고 있다.
남자 선수 탈의는 무죄, 여자 선수 탈의는 유죄?
유에스 오픈에서 여자 테니스 선수가 세트 시작 전 코트에서 셔츠를 고쳐 입었다는 이유로 경고를 받자 ‘왜 여자만 안 되냐’는 항의가 빗발쳤다. 미국테니스협회는 뒤늦게 잘못을 인정하고 규정을 고치겠다고 밝혔다.
알리제 코르네(프랑스·세계 랭킹 31위)는 28일 휴식 시간이 끝나고 3세트 경기를 위해 코트에 섰다. 베이스라인 뒤에 선 그는 곧 셔츠의 앞뒤가 바뀌었음을 깨닫고 카메라를 등진 뒤 옷을 고쳐 입었다. 그 순간 심판이 경고를 줬다. 코르네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항의의 몸짓을 했다.
코르네가 규정을 몰라 잘못했겠거니 여기는 이들도 있었지만, 다수의 테니스 팬들은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남자 선수들은 아무렇지 않게 코트에서 셔츠를 벗거나 바꿔 입는 것을 봐왔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대회는 섭씨 38도까지 치솟는 더위 속에 치러지고 있어 남자 선수들의 ‘노출’ 장면이 계속 나왔다. 쓰러져 경기를 포기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로 선수들에게는 악몽의 대회가 되고 있다. 코르네가 경고를 받은 날에도 노박 조코비치(세르비아·10위)나 로저 페더러(스위스·2위) 등 남자 선수들은 의자에 앉아 아무렇지 않게 웃통을 벗었다. 라파엘 나달(스페인·1위)은 경기에서 이기면 윗옷을 벗고 몇분간 서 있는 게 습관이다.
웃통 전체를 드러내는 남자 선수들에 견줘, 코르네는 스포츠 브라를 안에 입었기에 노출이 심했다고도 할 수 없다. 테니스 팬들 사이에서는 심판이 뭔가 오해를 한 것 아니냐는 추측도 나왔다.
하지만 유에스 오픈을 포함한 그랜드 슬램 대회 규정은 여자 선수들에 대해서만 코트 위 탈의를 금지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시엔엔>(CNN)은 이날 저녁 미국테니스협회가 심판은 적절한 행동을 했다는 입장을 전해왔다고 보도했다. 그랜드 슬램 대회 규정은 여자 선수들은 심판에게 요청해 옷을 바꿔 입을 시간을 얻을 수 있다고 돼있으며, 이를 준수하지 않으면 스포츠맨십 위반으로 간주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자 여론이 더 들끓었다. 에스엔에스(SNS)에는 말도 안 되는 규정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유에스 오픈은 1973년에 그랜드 슬램 대회들 중 최초로 남·녀 우승 상금을 동일하게 하며 스포츠 성차별 폐지의 선구자로 인식되기도 했으나 이번 일로 손가락질을 받게 된 것이다.
미국테니스협회는 결국 29일 백기를 들었다. 이 협회는 “어제 코르네에 대해 규정 위반 논란이 인 것은 유감이다. 규정 위반 후속 조처도 진행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 이번 논란을 계기로 차별적 탈의 규정을 적용하지 않고, 남·녀 선수 모두 의자에 앉아있을 때 셔츠를 갈아입을 수 있게 하겠다고 했다. 여자 선수들은 별도로 요청하면 탈의실에서 갈아입을 수 있도록 조처하겠다고도 했다.
세계여자테니스협회는 그랜드 슬램 대회의 기존 탈의 규정은 불공정하다며, 이를 고치기로 한 미국테니스협회의 결정을 환영했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