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제일주의를 내세우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11월 미국 중간선거가 다가오며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만들고 주도해온 현존 국제질서를 허물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미국 제일주의’(아메리카 퍼스트)가 날이 갈수록 노골적이고 격렬해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일(현지시각) 트위터에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개정 협상을 진행 중인 캐나다를 염두에 두고 “우리는 나쁜 무역협정들과 공짜 군사보호로 친구들을 사서는 안 된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며 자신의 ‘미국 제일주의’ 이념을 다시 한번 함축적으로 드러냈다. 미국이 오랫동안 구축해온 동맹과 자유무역 질서를 지키기보다 미국의 ‘직접적’이고 ‘즉자적’인 이익을 챙기겠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나프타 개정 협상을 통해 보이는 언행을 보면, 2017년 1월 취임 이후 거듭 말해온 ‘미국 제일주의’ 즉, ‘동맹 및 자유무역 질서로부터의 이탈’이 무엇인지 명확히 알 수 있다. 그는 1일 트위터에선 자유무역의 중요 상징인 나프타를 파기할 수 있다고 거듭 위협하며 “새 나프타에 캐나다를 계속 머무르게 할 정치적 필요성이 없다”고 강조했다. 지난달 28일 멕시코 대통령과 전화통화에선 “솔직히 가장 편한 것은 (캐나다를 나프타에서 쫓아내고 캐나다산) 자동차에 관세를 부과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캐나다와 나프타 개정 협상의 마감시한으로 정해뒀던 지난달 31일이 지나자, 5일 협상을 재개한다고 밝히면서도 이미 정해진 미국-멕시코 합의안을 의회에 통보했다. 미국에 경제적 도움이 안 된다면, ‘기본적 가치’를 공유하며, 국경을 맞대고 있는 가장 밀접한 동맹국을 내다버릴 수 있다는 태도다.
나프타로 상징되는 다자간 합의보다는 미국과 상대국 사이의 ‘일대일’ 접근을 선호하는 것이 트럼프주의의 중요한 본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자주의가 “우리 문제를 통제하는 우리의 능력을 감소시킨다”고 말해왔다. 2차대전과 1980년대 말~1990년대 초 냉전 해체 이후 미국이 만들고 주도해온 다자주의적인 동맹과 무역질서가 미국에 해롭고 경쟁국들에 유리하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실천하듯 무역 부문에선 아시아-태평양 지역 11개국과 함께 만든 환태평영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 일방적으로 탈퇴했고, 나프타 재협상을 선언했으며, 파리기후변화협약을 파기했고, 미-중 무역전쟁을 시작했다. 심지어 지난달 31일엔 세계 자유무역 질서의 규범을 제공하는 세계무역기구(WTO)에 대해 “태도를 바꾸지 않으면 탈퇴하겠다”는 말까지 했다. 안보 분야에선 ‘이란 핵협정’을 탈퇴하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비롯한 주요 동맹국들에 국방비 분담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
이에 대해 미국의 진보와 보수를 아우르는 주류에선 미국의 장기적 국익과 지도력에 발등을 찍는 자해행위라고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과 그 지지층은 미국이 지켜온 ‘자유주의적 국제질서’란 결국 미국 기득권층과 동맹국의 이익에만 봉사하는 것으로 미국의 양극화를 불러왔을 뿐이라고 맞서고 있다.
이들에 따르면, 소련 해체와 냉전의 붕괴로 러시아의 군사적 위협이 끝났는데, 미국은 나토를 확대재생산하며 전체 국방비의 73%를 부담하고 있다. 또 자유무역 질서를 유지하는 과정에서 미국의 무역적자는 2017년 5660억달러로 늘었다. 특히 미국의 대중 무역적자는 무려 3750억달러에 이른다. 이를 통해 미국 내 제조업 등은 몰락했고 중서부 및 내륙의 백인 중하류층은 경제적 지위가 하락하며 큰 피해를 입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들의 불만을 ‘미국 제일주의’라는 구호에 담아 지난 미국 대선에서 승리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제일주의가 북핵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한국 등에 ‘전략적 숨통’을 열어준 측면도 있다. 미국이 대결과 압박 대상으로 여겨온 전통적 적성국가에 대해 기존 미국의 외교 규범에 맞지 않는 ‘전혀 다른’ 접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와는 화해와 협조를 통해 국제분쟁을 해결하겠다는 자세를 보여왔고, 북한과도 역사적인 6·12 싱가포르 정상회담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제일주의’가 쇠퇴하는 미국의 국력을 반영한 ‘현실주의’라는 분석도 있다. 랜들 슈웰러 오하이오주립대 교수는 <포린 어페어스>에 ‘트럼프 대외정책의 세가지 환호’라는 글을 통해 트럼프의 대외정책은 미국의 국력이 상대적으로 저하되고, 경쟁국이 부상하는 ‘미국 일극주의’ 쇠퇴에 대응하는 전략이라고 옹호했다.
트럼프 대통령을 둘러싼 여러 논란, 스캔들, 언론 비판에도 지지율이 취임 때와 비슷한 40%대 후반을 꾸준하게 유지하는 것은 미국인 상당수가 그의 노선을 지지하고 있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제일주의는 11월 중간선거가 다가오면서 더욱 격렬해질 것으로 보인다. 중간선거 승리를 위해 지지층을 결집하고, 성과를 극대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트럼프 대통령은 조만간 무역전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을 향해 2천억달러 규모에 ‘3차 포격’을 하는 동시에 25일로 예정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의 미-일 정상회담에서 양자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