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의회 앞에서 시민 수백명이 ‘자본주의가 기억을 태웠다’라고 적힌 현수막을 들고 전날 벌어진 국립박물관 대형 화재 사건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리우데자네이루/AFP 연합뉴스
2일 밤, 어류학 전문가인 파울루 버크업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연방대학 교수는 불길에 휩싸인 국립박물관 안으로 뛰어들었다. 연구 표본의 일부라도 구하겠다는 절박한 심정에서였다. 그는 “소방관들은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물도, 사다리도, 장비도 없었다. 가능한 것을 구하려 우리가 문을 부쉈다”고 했다.
1999년 9월20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국립박물관이 1만2천년 전 여성의 유골을 통해 최초의 브라질 여성 얼굴을 재현한 뒤 전시하고 있다. 리우데자네이루/AFP 연합뉴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국립박물관이 잿더미로 바뀌는 장면을 바라보던 시민들은 분노했다. 3일 오전 정문 밖 공원에는 수백명이 모여 박물관 예산 삭감에 항의하는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고 <에이피>(AP) 통신이 보도했다. 시민들은 방재 당국의 무능함과 박물관의 감독 소홀, 정부의 예산 감축을 비판했다. 시위에 참여한 교사 호자나 올란다는 “그들은 우리 역사를, 우리 꿈을 태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찰은 이들에게 최루가스를 뿌렸다. 미셰우 테메르 브라질 대통령은 “공적·사적 기금을 사용해 박물관을 재건축하도록 지시했다”며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국립박물관에 전시돼 있던 1만2천년 전 여성의 유골. 오른쪽은 브라질 최초의 여성 모습을 재현해 낸 작품.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국립박물관 공식 누리집 갈무리
1808년 나폴레옹의 침략 위협에 직면한 포르투갈 여왕 마리아 1세는 당시 식민지 브라질로 건너와 이 건물을 궁궐로 사용했다. 건물은 1818년부터 박물관으로 쓰였다. 2000만점의 유물을 소장한 200년의 역사를 간직한 미주 최대 자연사 박물관이지만, 그곳에서 발생한 화재와 수습 과정은 ‘총체적 난국’이었다. 화재 원인은 지붕에 날아온 작은 종이 열기구로 추정된다. 그러나 스프링클러가 없어 초기 진화에 실패했다. 소방관들은 인근 소화전이 말라 근처 호수에서 물을 끌어다 써야 했다. 5시간이나 지나 건물 뼈대만 남기고 모든 것이 타버린 뒤에야 겨우 불길이 잡혔다.
리우데자네이루 연방대와 정부가 함께 운영해온 이 박물관은 최근 몇 년간 심각한 예산 불균형으로 여러 차례 지적을 받았다. 루이즈 페르난도 디아스 두아르테 부관장은 “지난 6월 방재 시스템을 포함한 현대화 작업을 진행하기로 하고 530만달러(약 59억원)를 받기로 했다. 그러나 이 돈은 10월 대선 이후 투입될 예정이었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2013년 박물관 개·보수를 위해 자금을 요청했지만, 정부가 월드컵 경기장 건설을 우선시해 돈을 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브라질이 입은 역사·과학·문화적 피해는 추산조차 어렵다. 이곳엔 1500년 포르투갈 원정대의 브라질 상륙 이후 1889년 공화정 수립 때까지 여러 세기에 걸친 각종 역사·자연 유물이 있었지만, 일부 운석을 빼곤 거의 다 소실됐다. 사라진 자료들 중엔 브라질 토착어를 기록해 둔 텍스트와 음향 자료, 공룡 뼈, 이집트의 석관 등 값어치를 따지기 어려운 세계적·지역적 역사 유물이 포함돼 있다. 특히 1만2000년 전 여성의 유골인 ‘루지아’는 남미에 인류가 정착한 시기를 추정할 수 있는 ‘열쇠’라 불려왔다. 박물관은 1999년 ‘루지아’를 통해 최초의 브라질 여성의 얼굴을 재현하는 행사도 열었다. 파울로 크누스 박물관장은 “문명에 관심이 있는 모든 이들에게 가격을 매길 수 없는 큰 손실”이라고 말했다.
김미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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