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저민 글래스먼 미국 연방검사가 10일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산업기밀 절취 혐의로 중국 국가안전부 소속 정보원 쉬옌쥔 기소한 사실을 발표하고 있다. 신시내티/AP 연합뉴스
미국 행정부와 의회가 중국의 ‘첨단기술 절취’와 ‘인권’을 고리로 대중국 총공세에 나섰다. 미국의 산업기밀을 훔치려던 중국 정부 쪽 스파이가 처음으로 제3국에서 체포돼 미국 사법당국으로 넘겨지는가 하면, 의회에선 중국의 위구르족 탄압을 이유로 4년 뒤 중국서 열릴 겨울올림픽 개최를 막자는 제안이 나왔다.
<월스트리트 저널> 등 미국 언론들은 10일, 2013년 12월부터 올해 4월 체포 직전까지 ‘제너럴 일레트릭스(GE) 항공’을 비롯한 미국 항공우주 업체들에서 군사·상업용 항공기 기밀을 빼내려 한 혐의로 중국 국가안전부 소속 정보원 쉬옌쥔이 기소됐다고 보도했다. ‘지이 항공’은 보잉과 에어버스 등에 엔진을 공급해온 세계적 업체다. 상대국 정보원의 신원과 소속 공개는 이례적인 일로, 중국 정부에 대한 강력한 경고로 풀이할 수 있다.
쉬옌쥔은 장쑤성 과학기술증진협회 관계자로 위장해 미국 기업 직원들에게 접근한 뒤, 이들을 중국 대학 프레젠테이션이나 아이디어 교환 명목으로 중국으로 초청해 여행 경비를 제공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그는 지난 4월 ‘지이 항공’의 엔진 날개 디자인과 재료에 관한 자료를 얻기 위해 이 회사 직원에게 ‘벨기에에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가 미리 발부된 미국 법원의 영장에 따라 벨기에 당국에 붙잡혔다. 그는 범죄인 인도절차에 따라 9일 미국으로 송환돼 첫 재판을 받았다. 중국 정부 스파이가 미국으로 송환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미국 언론들은 전했다.
이와 관련해 루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1일 정례브리핑에서 “미국 쪽의 (쉬옌쥔) 기소는 완전히 날조한 것”이라며 “미국이 법에 따라 공정하게 처리하고 중국 국민의 합법적인 권리를 보장하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앞서 미국 사법당국은 지난달 26일 지차오췬이라는 이름의 중국인 엔지니어를 비슷한 혐의로 기소했다. 미국이 불과 2주 사이에 중국 정보원 체포를 잇따라 공개한 것은 미국 내에서 중국의 기술 절취에 대한 높아진 경계심을 보여준다.
첨단기술 보호는 미-중 무역전쟁의 핵심 이슈다. 미국은 중국이 스파이 행위나 미국 기업 인수·합병을 통해 지적재산권을 손쉽게 획득하고 있다며 불만을 표시해왔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해 미국 재무부도 외국인 투자자가 미국의 반도체, 통신, 항공, 알루미늄, 유도미사일 등 군사 장비 및 안보 관련 27개 산업 부문의 기업에 투자할 경우 이를 재검토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을 다음달 11일부터 시행한다고 밝혔다. 이는 중국을 겨냥한 것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인권 문제와 관련해선 마르코 루비오 상원의원과 크리스 스미스 하원의원이 같은 날 기자회견에서 중국 정부의 ‘위구르족 탄압’을 지적하며 “4년 뒤 겨울올림픽 개최지로 중국은 어울리지 않는다”며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재검토를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미-중 무역전쟁이 남중국해를 둘러싼 안보 갈등을 넘어 인권 문제로 확산되는 양상이다.
한편 중국 정부가 신장 지역 무슬림인 위구르족을 탄압하고 있다는 주장의 핵심으로 떠오른 ‘재교육 캠프’는 정식 법제화를 통해 ‘합법’ 기구가 될 전망이다. 신장 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가 9일 통과시킨 조례 수정안을 보면, 재교육 캠프를 일컫는 ‘직업기능교육훈련센터’(센터) 관련 내용이 새로 들어갔다. 재교육 캠프는 지금까지는 직업학교나 관공서 등으로 위장해 암암리에 운영돼온 탓에 정확한 숫자나 수용자 규모가 확인된 바 없다.
이용인 기자, 베이징/김외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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