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8일 국경장벽 설치를 호소하기 위한 대국민 방송 연설을 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역대 최장기간 이어진 셧다운(일시적 업무정지) 사태 속에서 20일 취임 3년차를 맞았다. 집권 하반기에도 ‘미국 우선주의’에 바탕을 둔 일방주의적 정책으로 하원을 장악한 민주당과 사사건건 충돌할 것으로 보여 미국과 전 세계에 큰 혼란을 몰고 올 것으로 보인다.
20일 현재 역대 최장기간인 30일째에 접어든 미국의 셧다운 사태는 좀처럼 해결의 실마리가 풀리지 않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트위터에 “오후 4시께 중대발표를 하겠다”는 글을 올리며 민주당을 향한 ‘빅 딜’을 제안했지만, 민주당의 거부로 사태 수습에 실패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국민 연설에서 내놓은 타협안은 의회가 멕시코 국경장벽 건설 예산 57억달러(약 6조4000억원)를 통과시키면 불법 체류 청소년의 추방을 유예한 프로그램인 ‘다카’(DACA)를 3년 연장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또 남미·아프리카 출신 이민자들에게 미국 내 임시 체류를 허용한 ‘임시보호지위’(TPS) 갱신을 중단한 것도 당분간 유예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민주당의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그 제안은 예전에 이미 거부했던 내용이다. (이민자 문제의) 영구적인 해결책을 담고 있지 않다”며 이를 거부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민주당 지도부 간의 정면충돌이 장기화하자, 결국 ‘국가비상사태’가 선포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 경우 하원을 장악한 민주당과 갈등이 극에 달할 뿐 아니라, 현 상황을 국가비상사태로 볼 수 있냐는 법적 공방이 이어지며 혼란이 더 커질 수 있다.
지난해 11월 멕시코 국경도시 티후아나에 도착한 일부 카라반이 철제 국경장벽 위를 올라가고 있다. 티후아나/EPA 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이 국경장벽 문제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굽히지 않는 것은 자신의 핵심 지지층에 대한 ‘주요 공약’이기 때문이다. 이 공약에서 후퇴하면 미국인의 약 35%에 해당하는 ‘콘크리트 지지층’이 실망감을 쏟아내며 재선 길에 적신호가 켜질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14일 트위터에서 이를 의식한 듯 “나는 여러분과 약속한 것을 실행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생각이 하원을 장악한 민주당과 정면충돌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년 동안 멕시코 국경장벽뿐 아니라 중국과 무역전쟁, 파리기후협약 탈퇴, 이란 핵협정 파기,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폐기, 실리아 미군 철수 등 기존 미국의 대외 정책의 규범과 관습에 반하는 정책을 쏟아냈다. 렉스 틸러슨 전 국무장관, 제임스 매티스 전 국방장관 등 자신의 핵심 각료들마저 이에 반발하며 사표를 냈다. 트럼프 정권의 고위 관료의 이직률은 65%에 달했다.
미국 언론들의 예측도 비슷하다. <뉴욕타임스>는 19일 트럼프 대통령의 “지난 2년보다 남은 2년이 더 큰 혼돈의 시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민주당은 트럼프 대통령의 집권 하반기 동안 각종 법안과 예산안 심의에서부터 청문회, 증인 소환, 문서 조사 등을 추진할 수 있는 권한을 바탕으로 대규모 공세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2월에 발표 예정인 로버트 뮬러 특검의 러시아 스캔들 수사결과에 따라 탄핵 여론까지 형성될 수 있다.
셧다운 사태를 바라보는 미국 여론은 차갑게 식어 있다. 미국의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갤럽 자료를 보면, 지난달 초까지만 해도 40%를 유지하던 트럼프 대통령 지지율은 2일 현재 37%까지 떨어졌다. 이에 견줘 그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의견은 59%까지 치솟았다. 미국 역대 대통령들 첫 2년의 지지율이 모두 50% 안팎이었음을 비교해 낮은 수치다. 하지만 미국 우선주의를 바탕으로 한 핵심 지지층을 겨냥한 정치로 ‘30% 말~40% 중반’의 지지율을 꾸준히 유지하는 등 역대 어느 정권보다 견고한 핵심 지지층을 확보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옥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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