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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미국·중남미

미 셧다운 한 달…‘생활고’ 공무원들 TV 들고 전당포 행렬

등록 2019-01-21 08:19수정 2019-01-21 21:47

미 전역 전당포에 공무원들…급전 마련 고육책
TV·보석에 부모 결혼반지까지…“못찾을까 걱정”
“믿고 뽑은 정치인들이 우릴 고통에…” 후회도

백악관 상주직원 79명→21명…햄버거 초청만찬
공무원 안정성 신화 깨져…“신규 채용에 악영향”
미국 연방정부 셧다운 29일째인 지난 19일, 캘리포니아주 노바토에서 급여를 받지 못한 해안경비대 직원 가족들이 푸드뱅크로부터 식료품을 무료로 제공받고 있다. 노바토/AFP 연합뉴스
미국 연방정부 셧다운 29일째인 지난 19일, 캘리포니아주 노바토에서 급여를 받지 못한 해안경비대 직원 가족들이 푸드뱅크로부터 식료품을 무료로 제공받고 있다. 노바토/AFP 연합뉴스
미국 연방정부의 사상 최장기 셧다운(부분 업무정지)이 20일로 한 달을 넘겼다. 그러나 국경장벽 예산을 둘러싼 트럼프 행정부와 의회의 힘겨루기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서, 급여를 받지 못한 80여만명의 연방정부 직원들과 계약직 노동자들의 생활이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

현직 공무원 가족들이 푸드 뱅크 앞에 줄을 서고, 생활비가 떨어져 전당포를 찾는 이들도 늘고 있다. 백악관조차 주방과 시설관리 등 상주 직원들이 평소의 4분의 1 수준으로 줄였다. 공무원은 고용과 급여가 안정적이라는 믿음이 깨지면서 향후 공무원 채용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북서부 몬태나주 빌링스의 전당포 업주 블레인 포트너는 19일 <뉴욕 타임스>에 “요즘엔 하루 평균 3명의 연방 공무원이 가게를 찾아온다”며 “손님들이 점점 더 많은 물건을 가져온다”고 말했다. 연방법원, 내무부, 교정국 등 셧다운에 직격탄을 맞은 기관 종사자들이 급전을 융통하려 맡기는 물건들엔 텔레비전과 보석류 등 값비싼 물건들도 포함돼 있다. 하지만 값을 넉넉히 쳐준 돈을 빌리기란 쉽지 않다. 한 고객은 수백달러를 호가하는 고급 펜들턴 담요를 맡기고 고작 50달러를 받아 갔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한 전당포의 모습. 연방정부 셧다운이 길어지면서 전당포에서 급전을 찾는 공무원들도 늘고 있다. 출처 위키미디어 코먼스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한 전당포의 모습. 연방정부 셧다운이 길어지면서 전당포에서 급전을 찾는 공무원들도 늘고 있다. 출처 위키미디어 코먼스
이런 사정은 동쪽 끝 버지니아주에서부터 서부 지역, 저 멀리 알래스카주까지 미 전역이 똑같다. 서부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의 한 전당포 업주는 <뉴욕 타임스>에 지난달 캘리포니아주에서 찾아온 고객이 “크리스마스 만찬을 차릴 돈이 없다”며 어머니의 결혼 반지를 맡긴 사연을 털어놨다. 이 점주는 “그 고객이 자신에게 이런 일이 생길 거라곤 생각도 못했을 것”이라며 “너무나 두려워 했다”고 전했다. 그는 연방정부 노동자들에겐 넉 달까지 무이자로 돈을 빌려주고 있다고 했다.

주 마다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전당포 이용자는 통상 월 20%의 이자를 보태서 몇 달 안에 갚지 못하면 저당잡힌 물건도 찾지 못한다. 공무원들은 셧다운이 종료되면 일터에 복귀하고 밀린 임금도 받을 수 있을 것이란 게 상식이다. 그러나 지금의 분위기는 그런 믿음마저 뒤흔들고 있다. 빌링스의 전당포 업주는 물건을 맡긴 연방정부 고객들이 돈을 갚지 못할까 걱정하는 전화가 하루에도 대여섯 통씩 걸려온다고 말했다.

지난 18일 미국 시카고에서 시민들이 끝날 기미가 안보이는 연방정부 셧다운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시카고/신화 연합뉴스
지난 18일 미국 시카고에서 시민들이 끝날 기미가 안보이는 연방정부 셧다운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시카고/신화 연합뉴스
지난 주 조지아주 주도 애틀랜타 도심에선 교통안전국과 관세국경보호청 직원과 가족들이 지역 푸드뱅크와 한 교회에서 제공하는 식료품을 받으려 길게 줄을 지어서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군인 출신의 한 공무원은 <시엔엔>(CNN) 방송에 “고통스럽고, 자책감도 든다”고 말했다. 자책감이 드는 이유에 대해선 “우리가 잘 할 거라고 믿고 뽑은 (행정부와 의회의) 관리들이 우리를 돌보지 않고, 임무 완수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을 고통에 빠뜨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셧다운 사태의 충격은 미국의 심장부인 백악관도 예외가 아니다. <워싱턴 포스트>는 지난 주 연방정부 관리예산실의 ‘셧다운 메모’를 인용해, 대통령 가족과 방문객들의 식사를 차리는 주방과 시설관리직 등 상주 직원들이 평소 79명에서 21명으로 대폭 줄었다고 보도했다. 백악관 관람 안내직과 꽃꽂이 담당 직원들은 졸지에 일자리를 잃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장녀로 백악관 선임고문 역을 맡고 있는 이방카도 직원이 10명에서 5명으로 절반이 줄었다. 지난 14일엔 트럼프 대통령이 전미 대학 미식축구 리그 우승팀을 백악관에 초청한 자리에서 햄버거와 피자를 내놔, 초청 만찬의 진의를 놓고 뒷말이 나오기도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9일 백악관에서 민주당 쪽에 국경장벽 예산과 불법체류자 추방 유예를 맞바꾸자는 제안을 하고 있다. 민주당은 근본 해결책이 아니라며 거부했다. 워싱턴/EPA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9일 백악관에서 민주당 쪽에 국경장벽 예산과 불법체류자 추방 유예를 맞바꾸자는 제안을 하고 있다. 민주당은 근본 해결책이 아니라며 거부했다. 워싱턴/EPA 연합뉴스
셧다운 장기화의 또다른 먹구름은 연방 공무원직의 ‘안정성’ 믿음이 깨진 것이다. 경영 리더십 전문가인 마크 머피는 20일 <포브스> 기고에서 “미국 역사상 최장기 셧다운은 정부가 양질의 인력을 고용하는 데에도 끔찍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고용난이 길제는 수년 간 이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특히 1990년대말 미국의 닷컴 버블 당시 유망한 젊은이들이 정보통신 분야에 몰렸다가 거품이 꺼지면서 실직과 파산의 고통을 겪은 사례를 빗대며, “이전엔 공무원 지망자들이 정부의 일자리의 안정성에 매료됐으나 지금은 그들의 고통에 동정심을 가질 것 같다”고 꼬집었다.

그러나 셧다운이 꼭 30일째 이어진 20일, 취임 2주년을 맞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민주당을 비난하며 장벽 건설의 필요성을 거듭 주장했다. 앞서 전날 트럼프 대통령은 의회 하원을 장악한 민주당이 장벽 예산 57억달러(약 6조4200억원)을 주면 불법체류 청소년 추방 유예 프로그램(다카·DACA)을 3년 더 연장하겠다는 거래를 제안했으나 민주당은 이를 거부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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