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 블라고예비치 전 일리노이 주지사가 18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사면(감형)을 받은 뒤 시카고 연방교도소에서 석방돼 기자들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시카고/EPA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매관매직’ 혐의 등으로 14년형을 선고받고 수감 중인 로드 블라고예비치 전 일리노이 주지사를 포함해 이름난 ‘화이트칼라 범죄’ 사범 11명을 무더기로 사면했다. 탄핵 국면을 벗어난 트럼프가 거침없는 사면권 행사 등을 통해 사법 시스템을 흔들고 있다는 비판이 고조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18일(현지시각) “블라고예비치에게 가해진 처벌은 터무니없이 과도한 것”이라며 블라고예비치 등을 사면했다고 <에이피>(AP) 통신 등이 보도했다. 블라고예비치는 민주당 소속이지만 트럼프가 진행하던 리얼리티쇼 <셀러브리티 어프렌티스>에 출연하며 인연을 맺은 사람이다. 그는 일리노이주 주지사 재직 시절 버락 오바마의 대통령 당선으로 시카고 지역 연방 상원의원 자리가 공석이 되자, 자신이 가진 상원의원 지명권을 놓고 정치적 거래를 시도한 혐의로 2011년 14년형을 선고 받아 8년째 복역해왔다. 그는 트럼프의 사면으로 이날 시카고 연방교도소에서 석방됐다.
블라고예비치를 비롯해 이번 사면 명단에는 ‘정크 본드(고수익·고위험 채권)의 왕’ 마이클 밀켄과 9·11 테러 영웅에서 횡령·탈세 등 각종 부정부패가 드러나며 나락으로 떨어졌던 버나드 케릭 전 뉴욕경찰청장, 사기도박 스캔들에 휘말렸던 샌프란시스코 프로풋볼팀 구단주 에드워드 디바톨로 주니어 등 11명(7명 사면·4명 감형)이 포함됐다고 미국 언론들이 전했다.
<뉴욕 타임스>는 “이번에 사면받은 이들이 수년간 트럼프 대통령의 사면을 설득하기 위한 섬세한 홍보 캠페인 등을 진행해왔다”며 “이번 트럼프의 사면 목적이 대체적으로 돈많고 영향력 있으며 넓은 인맥을 보유한 백인들의 잘못을 씻어주기 위한 것이었다”고 비판했다. 블라고예비치의 아내와 케릭 등이 <폭스 뉴스> 등에 빈번히 출연하며 억울함을 호소했고, 밀켄의 경우 최근 자선활동가로 탈바꿈하며 지인들을 통해 사면 운동을 해온 것을 지적한 것이다. <시엔엔>(CNN) 방송도 “(이번 사면의 원칙은) 대통령에게 사면권을 사용하라고 하는 고위층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에” 이뤄진 것이라고 비꼬았다.
특히 이번 사면은 트럼프가 ‘러시아 게이트’ 개입 및 위증 혐의로 기소된 오랜 절친 로저 스톤의 형량을 낮추기 위해 법무부에 입김을 행사했다는 의혹으로 논란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이뤄져 우려가 커지고 있다. 탄핵 재판에서 무죄를 받은 트럼프 대통령이 사법 개입의 한계를 넘어서는 권한 행사에 나서고 있다는 것이다. 법무부가 스톤의 감형에 나선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미국 언론에는 트럼프가 오는 20일 선고공판을 앞두고 있는 스톤은 물론, 탈세 혐의 등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폴 매나포트 전 선거대책위원장과 마이크 플린 전 국가안보보좌관의 사면을 고려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 민주당 소속 제이 로버트 프리츠커 일리노이 주지사는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동료들을 보상하고 부패를 용납하기 위해 이해할 수 없는 방법으로 사면권을 남용해왔다”며 “이번 사면이 잘못된 시기에 잘못된 메시지를 전달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당 중진 빌 파스크렐 하원의원도 “트럼프 대통령이 탄핵을 면한 그 순간부터 이렇게 될 것이라 예상했다”며 “이런 수치스럽고 뻔뻔한 범죄자들에 대한 사면 자체가 무법자 대통령의 또 하나의 국가적 스캔들로 취급받아야 마땅하다”고 규탄했다.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