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5일(현지시각) 백악관에서 열린 한 행사에서 발언하고 있다. 워싱턴/A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5일(현지시각) 독일에 주둔한 미군을 2만5000명으로 줄이겠다고 직접 밝힘으로써, 지난 5일 <월스트리트 저널>의 보도를 확인했다. 특히 “방위비 문제가 독일뿐 아니라 다른 나라들에도 해당된다”고 말해, 주한미군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트럼프는 이날 백악관에서 기자들이 ‘의회 내 공화당 의원들도 비판하는데 주독미군 철수를 재검토하고 있느냐’고 묻자 “독일은 수년 동안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에 채무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 그들은 2%를 내야 하는데 1%만 내고 있다”며 “우리는 (주독미군) 수를 2만5000명으로 줄일 것”이라고 말했다.
나토 회원국은 2024년까지 방위비 지출을 국내총생산 대비 2%까지 늘리겠다고 했으나, 지난해 독일의 방위비 지출 비중은 1.36%로 이 기준에 못 미친다. 이를 충족한 나라는 미국, 영국, 폴란드 등 9개국이다. 트럼프는 “독일은 채무불이행 상태”라는 말을 일곱차례나 썼다. 또 주독미군 규모를 “그때그때 다르다”면서도 상한선인 “5만2000명”이라고 말했다. 최근 <월스트리트 저널>은 트럼프가 주독미군을 9500명 감축하라고 지시했다면서, 이 경우 현재 3만4500명인 주독미군이 2만5000명으로 줄어든다고 보도했다.
트럼프의 주독미군 감축 발언은 독일과의 특수한 사정에 기인한다는 분석이 많다. 트럼프가 파리기후변화협약이나 이란핵합의 등에서 탈퇴할 때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반대하며 트럼프와 각을 세웠다. 메르켈은 최근 트럼프의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참석 제안도 코로나19 확산을 이유로 거절했다. 독일이 미국의 반대에도 러시아 가스관을 끌어오는 ‘노르트스트림2’ 건설을 강행한 데 대한 불만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가 유럽연합과의 유리한 무역협상을 위해 주독미군 감축을 지렛대로 사용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트럼프는 방위비 부담에 대한 불만이 독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고 언급했다. “나는 독일에 대해서만 말하는 게 아니다. 나는 다른 여러 나라에 대해서도 얘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구체적인 나라를 거론하지는 않았으나, 현재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 정체 상태인 한국에 미칠 영향에도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트럼프는 2018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을 자신의 무역성과로 자랑해왔다. 주한미군을 현재 수준(2만8500명)으로 유지하는 내용 등이 포함된 국방수권법에도 지난 연말 서명해 독일과는 상황이 다르다. 하지만 해외 주둔 미군 감축이 트럼프의 오래된 구상인데다,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져 있어 주한미군으로 불똥이 튈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워싱턴 외교가에서는 트럼프의 즉흥적 스타일을 볼 때,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 뜻대로 진행되지 않을 경우 주한미군 감축을 압박 카드로 꺼내들 수 있다는 관측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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