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 수도 카르카스에서 의사 한명이 코로나19 검사를 하던 도중 휴식을 취하고 있다. 카르카스/AP 연합뉴스
베네수엘라 출신 이주노동자 넬슨 토렐레스는 아내와 5살 딸과 콜롬비아의 도로를 몇 시간이나 걷다가 잠깐 휴식을 취했다. 수도 보고타에서 초콘타까지 사흘을 걸었지만 고국인 베네수엘라까지는 아직도 300마일(482㎞) 이상 남았다.
경제난 때문에 베네수엘라를 떠났던 이들 상당수가 코로나19 세계적 대유행 때문에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걸어서 귀환하고 있다고 미국 <월스트리트 저널>이 30일 보도했다.
토렐레스는 “딸의 미래를 위해 콜롬비아에 머물고 싶었지만, 돌아갈 수밖에” 없었던 수많은 베네수엘라인 중 하나다. 그는 보고타 바비큐 가게에서 일했는데 코로나19 감염 확산으로 인한 경기침체로 일자리를 잃었고 주택 임대료를 낼 돈도 없어졌기 때문이다. 토렐레스처럼 최근 외국에서 지내다가 돌아가고 있는 이들만 10만여명에 이른다고 신문은 전했다.
세계적 산유국인 베네수엘라는 2010년대 중반부터 유가 하락으로 경제가 직격탄을 맞아 극심한 인플레이션과 물자 부족에 시달려왔다. 경제적 어려움을 면하려 2014년 이후 베네수엘라를 떠난 이들이 500만명 정도로 추정되며, 대부분은 콜롬비아나 페루 같은 다른 중남미 국가로 떠났다. 이웃 나라인 콜롬비아에서 지내는 인구만 180여만명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코로나19 세계적 대유행 때문에 다른 중남미 국가들 경제 사정도 나빠지고 방역으로 문을 닫는 곳이 많아지면서, 일자리를 잃은 베네수엘라인들이 고향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게 됐다.
고향 베네수엘라로로 돌아가는 여정엔 여러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방역 조처 탓에 장거리 버스는 대부분 운행을 중단했다. 운전자들이 감염을 꺼리는 탓에 히치하이크조차 쉽지 않다. 역이민 길에 나선 베네수엘라인 상당수는 여행용 가방을 끌거나 짐을 머리 위에 이고 하염없이 걷는 일이 태반이다. 지름길로 가겠다고 산을 오르다가 저체온증으로 숨지는 이들도 있다. 국경지대에 설치된 이주노동자 지원 쉼터도 방역을 이유로 문을 닫았다. 베네수엘라 정부가 일주일에 1천명만 입국을 허용하고 있는 탓에, 국경 앞 열악한 임시시설에 머무는 베네수엘라인들도 많다.
간신히 고향에 돌아가도 따뜻한 대접을 받기는 어렵다. 초기에는 고향으로 돌아온 자국민을 환영했던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은 감염이 확산되자 태도를 바꿨다. 자신을 강하게 비판해온 콜롬비아 이반 두케 대통령이 ‘베네수엘라에 코로나19를 퍼뜨리기 위해 이민자들을 돌려보내고 있다’고 근거 없는 주장까지 펼치고 있다. 지난 5월 연설에서는 “그들이 돌아와서 베네수엘라 전역을 오염시키고 있다. 이반 두케가 명령한 일”이라고 말했다. 베네수엘라 정부 인사들은 돌아온 자국민을 “바이오 테러리스트”라고 부르기도 했다.
천신만고 끝에 고국에 돌아간다고 해도 오래 머무를 생각이 없는 이들도 있다. 에콰도르 나이트클럽에서 사운드 엔지니어로 일했던 카를로스 모레노는 신문에 “에콰도르 상황이 정상화 되면 돌아갈 것이다”고 말했다.
조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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