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백악관 앞에 지난 6일(현지시각)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반대한다는 뜻을 담은 검은 국기가 내걸렸다. 워싱턴/UPI 연합뉴스
미국의 저명 의학 저널 <뉴잉글랜드의학저널>이 코로나19 대응 실패의 책임을 물어 오는 11월3일 대선에서 투표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몰아내야 한다고 촉구하는 사설을 실었다. 정치적 중립성을 엄격히 지켜왔던 이 저널이 대선 후보에 대한 정치적 의견을 표명한 건 1812년 창간 이후 208년 만에 처음이다. 그것도 미국 시민이 아닌 1명을 제외한 편집자 34명 만장일치의 의견으로 나온 사설이었다.
<뉴잉글랜드의학저널>은 7일(현지시각) “트럼프 행정부가 코로나19 팬데믹(전세계적 대유행) 사태에 형편없이 대응해 위기를 비극으로 만들어놨다”며 “우리는 그들이 계속 자리를 지키게 둠으로써, 그들이 수천명의 미국인들을 죽게 만들도록 방조해선 안 된다”고 밝혔다.
에릭 루빈 <뉴잉글랜드의학저널> 편집장은 이번 사설이 미국 시민이 아닌 한 사람을 제외한 34명 편집자의 만장일치 의견으로 게재됐다고 밝혔다. 이전에 만장일치 의견의 사설이 실린 건, 단 4차례에 불과하다. 2014년 아놀드 렐만 전 편집장(1977~1991년) 추모 사설을 제외하면 피임·임신중지·표준치료연구 등 전부 의학적 주제에 한정된 사설이었다.
이 저널이 이례적으로 정치적 비판 사설을 내면서 밝힌 이유는, 트럼프 정부가 코로나19 확산 초기 검사를 너무 적게 한데다 마스크 쓰기나 사회적 거리두기 같은 중요한 조처들에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 해, 과도한 죽음을 초래하는 한편, 엄청난 경제적 고통과 사회적 불평등을 야기했다는 것이다. 저널은 또 트럼프 정부가 전문지식 보다는 진실을 모호하게 하고 노골적인 거짓말로 공포를 조장하는 무식한 ‘오피니언 리더들’과 돌팔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뉴욕 타임스>는 이번 사설을 두고 이 저널이 특정 대선 후보에 대한 공개적 지지를 표명한 것은 아니지만, 이번 대선에서 트럼프와 경쟁하는 후보는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밖에 없어 사실상 바이든에 대한 지지를 표명한 셈이라고 전했다. <뉴잉글랜의학저널>에 앞서 175년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의 인기 과학잡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도 지난달 15일 바이든에 대한 지지를 선언한 바 있다. 이 잡지가 대선 후보에 대한 공개 지지를 표명한 것도 역시 처음이다. 코로나19 사태를 정치적으로만 접근하다 확산 저지에 실패한 트럼프에 과학계가 등을 돌리는 모양새다.
이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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