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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미국·중남미

‘트럼프 추종’ 극우 음모론 집단 ‘큐어넌’, 미 공화당까지 잠식

등록 2020-10-21 15:03수정 2020-10-21 15:22

“오바마·클린턴 등 사탄 숭배 소아성애 집단이 미국 지배” 주장
‘어린이를 구하라’(세이브 더 칠드런) 내걸고 일반인에 접근
트럼프의 굳건한 지지층…트럼프도 큐어넌 메시지 전파
11월3일 상·하원 선거에 큐어넌 추종자 20여명 후보 출마
지난 10일(현지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 선셋대로에서 열린 극우음모집단 큐어넌의 집회에서 참석자들이 미국을 은밀하게 조정하는 소아성애자들로부터 어린이들을 구하자는 구호와 함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ㅁ모습이 담긴 팻말를 들고 있다. 시엔엔 누리집 갈무리
지난 10일(현지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 선셋대로에서 열린 극우음모집단 큐어넌의 집회에서 참석자들이 미국을 은밀하게 조정하는 소아성애자들로부터 어린이들을 구하자는 구호와 함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ㅁ모습이 담긴 팻말를 들고 있다. 시엔엔 누리집 갈무리

“어린이들을 구하라!”(세이브 더 칠드런!)

지난 10일(현지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의 선셋대로에서는 유명한 아동구호 단체의 이름과 그 구호가 울려 퍼졌다. 100년의 역사를 가진 아동구호단체인 ‘세이브 더 칠드런’의 행사는 아니었다. 미국 극우 음모집단인 ‘큐어넌’의 집회였다. 100여명의 참석자들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사진과 함께 ‘소아성애자들, 너희들은 감시받고 있다’ ’아동을 구조하자’는 문구를 적은 팻말을 들고 있었다.

큐어넌은 악마를 숭배하는 소아성애자들로 구성된 민주당 등 도당들이 미국을 지배하고 있다는 음모론에 근거해, 이들을 분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미국을 지배하는 대표적인 소아성애자들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 억만장자 투자자 조지 소로스 등을 꼽고 조 바이든 민주당 대통령 후보는 그 꼭두각시라고 주장한다.

큐어넌 추종자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전파하기 위해 ‘세이브 더 칠드런’이라는 저명 아동구호단체의 이름과 구호를 사칭하며 일반인들의 동참을 끌어내려 한다. 한 집회 참석자는 이를 취재하는 <시엔엔>(CNN) 방송 기자에게 “어린이들을 구하자는 게 뭐가 잘못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트럼프 취임 이후 미국 정치의 양극화가 심화되는 가운데 대선이 다가오자, 큐어넌은 온라인에 머물지 않고 현실세계로 나와 보수정당인 공화당의 강력한 지지층을 형성하고 있다. 심지어 큐어넌 추종자들은 오는 11월3일 선거에서 각급 선거 후보로 출마하고 있다. 공화당 지도부와 후보들도 이들에게 영합하는 발언과 행동을 마다하지 않고 있다.

지난 15일 마이애미에서 열린 타운홀 미팅 행사에서 트럼프가 한 발언이 대표적이다. 그는 큐어넌에 대해 평가하라는 질문이 거듭되자 “그것(큐어넌)이 소아성애에 대해 아주 강력히 반대한다는 걸 들었다. 나도 거기에 동의한다”고 답했다. 사실 트럼프는 큐어넌 추종자들과 미국에 대한 그들의 사랑을 칭찬해왔다. 큐어넌 음모론과 그 운동은 트럼프와 불가분의 관계이고, 더 나아가 트럼프 추종 운동이라고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큐어넌 음모론은 지난 2017년 10월 ’포챈’(4chan)이라는 익명 온라인 게시판에 ‘큐(Q)’라고 자칭하는 한 익명의 개인이 음모론을 올리면서 시작됐다. 그는 자신이 미국 정부 내에서 고위 정보에 대한 접근이 허가된 ‘큐’ 등급을 가진 정부 내 고위 인사라고 했다. 그는 미국 정부와 사회 내에 사탄을 숭배하는 소아성애자들이 있으며, 이들이 세계적인 아동 매춘·밀매단을 운영하며 트럼프를 반대하는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트럼프를 ‘이 도당을 척결하는 싸움을 벌이는 지도자’라고 설명했다. 이런 주장은 “트럼프가 수천명에 달하는 도당들을 체포할 ‘폭풍’이라는 급습작전을 펼치는 ‘대각성’의 날을 계획하고 있다”는 음모론으로 발전했다. 이런 음모론을 추종하는 사람들이 온라인 상에서 큐어넌으로 진화했다.

2016년 대선 때부터 이미 큐어넌 탄생의 전조는 있었다. 당시 대선 과정에서 클린턴 후보가 국제아동매춘밀매단 운영에 관여됐다는 음모론이 터져나왔다. 당시 온라인 상에선 클린턴 등이 워싱턴 교외의 한 피자 가게에서 흡혈 의식을 하는 사탄숭배 집회를 갖는다는 음모론이 나돌았다. 이 음모론을 접한 에드가 매디슨 웰치라는 남성은 어린이들을 구하고 그 집단을 처벌하겠다며 실제 그 식당을 찾아가 총기를 난사했다. ‘피자게이트’로 불린 이 사건은 가짜뉴스와 음모론의 폐해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피자게이트 이후 큐어넌의 음모론은 더욱 정교해졌고, 2018년 8월부터는 트럼프의 재선운동 집회에 큐어넌 추종자들이 등장하는 등 정치세력화했다. 큐어넌 음모론을 전파하는 빌 미첼이라는 방송인이 2019년 7월 백악관에서 열린 ‘소셜미디어정상회의’에 초청받아 참석하기도 했다.

이런 일은 트럼프의 적극적 후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미디어 연구기관인 ‘미디어 매터스 포 아메리카’의 최근 분석에 따르면, 트럼프는 150개의 큐어넌 관련 계정들을 리트위트하거나 언급하면서 큐어넌의 메시지를 최소 250차례나 확산시켰다. 그는 하루에 몇 차례씩 큐어넌 메시지를 올리기도 했다. 이 때문에 큐어넌 추종자들은 트럼프를 ‘큐 플러스(Q+)’라고 지칭한다.

큐어넌 추종자들이 사실상 트럼프의 굳건한 지지층으로 자리잡으면서, 공화당 내에서도 이들은 무시할 수 없는 정치세력으로 커지고 있다. 대선 등 각급 선거가 함께 치러지는 오는 11월3일 선거에서 큐어넌 추종자이거나 이들의 지지를 받는 후보가 10여명 넘게 출마했다.

대표적인 인물이 조지아주 제14연방하원의원 선거구에 출마한 마저리 테일러 그린(48) 공화당 후보이다. 공화당 후보 경선에서 큐어넌 음모론을 공공연하게 표방했던 그는 경선 승리 뒤 트럼프로부터 트위터 지지 메시지를 받으며 단번에 주목받는 후보로 떠올랐다. 그는 “사탄 숭배 소아성애자를 일삼는 국제 도당들을 퇴출하는 일생에 한번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그의 출마 지역구는 강고한 공화당 지역이어서 당선이 거의 확정적이다.

오는 11월3일 대선과 함께 치러지는 연방하원의원선거에서 조지아 제14선거구의 공화당 후보로 출마한 큐어넌 음모론자 마저리 테일러 그린(가운데)이 지지자들과 함께 집회에 참석해 미국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오는 11월3일 대선과 함께 치러지는 연방하원의원선거에서 조지아 제14선거구의 공화당 후보로 출마한 큐어넌 음모론자 마저리 테일러 그린(가운데)이 지지자들과 함께 집회에 참석해 미국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오리건에서 공화당 연방 상원의원 후보로 출마한 조 래 퍼킨스(64)도 큐어넌 음모론자다. 그는 당내 경선에서 50% 이상의 지지를 받아 압도적으로 승리했다. 그는 당내 경선 승리 연설 동영상에서 “트럼프 대통령, 큐와 그 팀과 함께 하겠다. (큐)어논들과 애국자들에게 감사한다. 우리 모두 함께 우리의 공화국을 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콜로라도 제3연방하원의원 선거구의 공화당 후보인 로런 베버트도 당내 경선에서 큐어넌 음모론을 주장하며 현직 의원에게 승리했다. 콜로라도에서 현직 의원을 당내 경선에서 물리친 것은 48년 만에 처음이다. 그는 경선에서 강력한 총기 소유권 옹호론과 큐어넌 음모론을 결합시켜 보수층들을 격동시켰다. 그는 큐어넌 지지 누리집에서 진행된 쇼에 출연해 “내가 큐에 대해 들은 모든 것은 진실이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미국이 더 강해지고 좋아지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당선이 유력한 마저리 테일러 그린의 선거구는 큐어넌이 왜 공화당 내에서 위력을 발휘하는지 말해준다. 조지아의 대도시 애틀랜타의 북부 교외에서 인근 테네시주와의 접경까지 펼쳐진 이 선거구는 주민 구성에서 백인과 공화당원이 압도적이다. 소득은 평균보다 훨씬 적고, 이민자와 외국 제조업에 대한 불만이 압도적으로 높다.

트럼프는 지난 대선 때 이곳에서 70% 이상을 득표했다. 자신들이 미국의 주인인데 이민자들에게 역차별받는다고 생각하는 비도시 지역 백인 중하류층들의 지지 덕분이었다. 이들이 큐어넌의 음모론자들의 주축이다.

이들은 트럼프가 지난 대선에서 기존 엘리트들을 공격하며 워싱턴을 청소하겠다고 한 데 대해 전폭적인 공감을 표했다. 조지아 지역 공화당 부의장인 매크레이 카이어(24)는 “우리는 소아성애자들의 얘기를 잘 의식하고 있다”며 “그것은 그 엘리트들이 우리를 어떻게 전쟁으로 끌어들이고, 권력을 남용하고, 일반적인 중산층들을 이용하는 지에 관한 것”이라고 말했다. 큐어넌 음모론이 엘리트 질서에 대한 소외된 백인 중산층의 불만을 자극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17일 애리조나 스콧스데일의 한 리조트에서는 가장 열렬한 큐어넌 추종자들의 총회라 할 수 있는 ‘큐 콘 라이브’ 모임이 개최됐다. 이날 행사에서 참석자 100여명은 소아성애자 도당들의 체포에 대한 큐어넌의 예견이 결실을 맺으려면 트럼프의 재선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도출했다고 <시엔엔> 방송은 전했다. 일부 참석자는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 뒤인 2017년, 클린턴 등이 체포되리라는 큐어넌의 예견이 실현되지 않은 것에 조바심과 회의를 드러내기도 했다. 하지만 트럼프가 재선 되면, 이 모든 예견이 앞뒤가 맞게 될 것이라는 목소리가 압도했다. 미국에서도 음모론은 극단적인 소수의 망상이나 술자리 뒷담화 거리로 치부됐다. 하지만 정치양극화로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이라는 결과가 초래되면서, 극단적 음모론까지 미국 사회의 대중적인 운동으로 자리잡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었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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