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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미국·중남미

에스퍼 국방 전격 경질…트럼프, 정부·공화당에 ‘충성’ 압박

등록 2020-11-10 17:25수정 2020-11-11 02:44

대선 불복 이어 몽니 부리기
지난 3월18일(현지시각) 워싱턴 백악관에서 열린 코로나19 태스크포스팀 일일브리핑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의 발언을 듣고 있다. 워싱턴/로이터 연합뉴스
지난 3월18일(현지시각) 워싱턴 백악관에서 열린 코로나19 태스크포스팀 일일브리핑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의 발언을 듣고 있다. 워싱턴/로이터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임기 말 눈엣가시 국방장관을 전격 경질하고, 측근 법무장관은 부정선거 조사를 지시했다. 트럼프 행정부와 공화당 쪽이 반대파 축출로 레임덕 차단에 나서는 한편, 조직적인 대선 불복 움직임에 나선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9일(현지시각)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을 전격 경질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트위터에 “매우 존경받는 크리스토퍼 C. 밀러 대테러센터장이 즉시 효력 발생으로 국방장관 대행이 될 것이라는 점을 발표하게 돼 기쁘다. 밀러는 아주 잘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임기를 70여일 남긴 대통령이 안보 수장을 바꾸는 것은 전직 대통령들에게서는 찾기 힘든 이례적 행동이다. 내년 1월20일 임기가 끝날 때까지 남은 “72일이 미국 현대 정치사에서 가장 난폭하고 고삐 풀린” 시간이 될 것임을 상징하는 첫 조처라고 <시엔엔>(CNN)은 이날 평했다.

에스퍼 장관은 트럼프의 ‘예스퍼’(Yesper)로 불렸으나, 지난 6월 인종차별 반대 시위에 군을 동원할 수 있다는 트럼프의 방침에 공개적으로 반기를 들었다. 이때부터 트럼프의 눈 밖에 났고, 10월부터 경질설 보도가 나왔다.

트럼프가 이미 식물장관인 에스퍼를 굳이 경질한 것은, 대선 불복 상황에서 레임덕을 차단하고 행정부와 공화당 안팎에 대한 장악력을 높이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트럼프는 지난 대선의 6300여만표보다 850만표가 많은 7153만표를 얻어, 자신의 득표력과 열성 지지층의 존재를 입증했다. 공화당 간판을 달고 정치하려는 사람들은 트럼프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처지다.

에스퍼 찍어내기는 2024년 대선 재도전을 염두에 두고 자신에게 충성하라는 강력한 신호이기도 하다. 존 매켄티 백악관 인사국장은 ‘다른 일자리를 원한다는 사람이 있으면 잘라주겠다’는 얘기를 퍼뜨리고 있다고 <시엔엔>이 행정부 고위 인사를 인용해 보도했다. 워싱턴에서는 크리스토퍼 레이 연방수사국(FBI) 국장 및 지나 해스펠 중앙정보국(CIA) 국장이 다음 경질 대상으로 거론된다. 두 사람 모두 조 바이든 당선자의 아들 헌터 의혹, 우편투표 문제, 러시아의 미국 대선 개입 의혹 사건 등에서 트럼프의 주장을 적극 뒷받침하지 않았다. 코로나19 대응에서 트럼프와 엇박자를 내온 앤서니 파우치 국립알레르기·감염병연구소 소장 등도 경질설이 나온다. 찍어내기를 통해 트럼프 충성파로만 일종의 ‘그림자 내각’을 꾸려 지지층에게 보여주려는 움직임이다.

에스퍼 경질 직후 윌리엄 바 법무장관은 연방검사들에게 ‘선거부정’에 대한 실질적 혐의가 존재한다면 대선 결과가 확정되기 전에 이를 추적할 것을 재가했다. 바 장관은 트럼프 충성파로 분류되나, 바이든 당선자 쪽 ‘우크라이나 스캔들’ 수사에 소극적이어서 트럼프로부터 질책을 받고 해임 가능성이 거론된 바 있다.

바 장관뿐 아니라, 그간 선거 결과에 침묵하던 공화당 지도부도 일제히 트럼프를 옹호하고 나섰다.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는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100% 그의 권한 내에서 부정행위 의혹을 살펴보고 법적 선택권을 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도 “모든 합법적인 투표가 집계될 때까지 계속 싸울 것”이라는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 트럼프 행정부와 공화당에서 조직적인 불복이 시작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하지만 정부 여당의 전례없는 대선 불복에 대한 내부 반발도 터져나올 조짐이다. 9일 법무부 공직자청렴수사국(PIS) 산하 선거범죄부서 책임자인 리처드 필저 검사는 바 장관의 부정선거 조사 지시가 나온 지 몇시간 만에 항의 표시로 사직서를 제출했다. 필저 검사는 동료 검사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바 장관이 “선거 결과가 이의 없이 확정되기 전에는 부정선거 수사에 개입하지 않았던 ‘40년 정책’을 폐지하는 중대한 새 정책을 발표했다”고 비판했다.

정의길 선임기자,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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