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지지자들이 14일(현지시각) 수도 워싱턴의 연방대법원 앞에서 이번 대선 승자는 트럼프라고 외치며 시위를 하고 있다. 워싱턴/EPA 연합뉴스
“도둑질을 멈춰라!”
미국 수도 워싱턴에서 14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 수천명이 참가하는 대선 불복 집회가 열렸다. 같은 날 거리에선 “트럼프가 졌다”며 대선 결과에 승복하길 촉구하는 반트럼프 시위대의 목소리도 울려 퍼졌다. 낮 동안 비교적 평화롭게 진행되던 시위는 밤이 깊어지면서 두 진영 간 유혈충돌로까지 비화했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집회 시작 두 시간 전인 오전 10시부터 백악관 인근 프리덤 플라자로 모여들었다. ‘백만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뜻) 행진’ ‘트럼프를 위한 행진’ ‘도둑질을 멈춰라’ 등의 이름을 내세운 다수의 단체가 연 이날 집회에는 극우 음모론자 앨릭스 존스를 비롯해 이번 선거에서 조지아주 하원의원에 당선된 큐어논 신봉자 마저리 테일러 그린 등이 연사로 나서 이번 대선이 ‘사기’였다는 근거 없는 주장을 이어갔다고 신문은 전했다.
케일리 매커내니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집회에 100만명이 참가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 정도는 아니었다’는 게 미 언론들의 대체적인 반응이다. <뉴욕 타임스>는 “독립기념일 같은 때 정도는 아니다”라는 집회 현장 인근 경찰서 관계자의 말을 인용하며, 프리덤 플라자 등 인근 몇개 거리에 수천명의 시위대가 퍼져 있었다고 전했다. 보수 성향 <폭스 뉴스>는 수만명으로 추산했다.
이날 워싱턴 거리에선 300여명의 반트럼프 시위대가 “선거는 끝났다. 결과에 승복하라”며 맞불 집회에 나서기도 했다. 낮 동안 비교적 평화롭게 진행됐던 시위는 이로 인해 두 진영 간 주먹질이 오가는 등 짧고 격렬한 충돌로 이어지기도 했다. 특히 밤이 깊어지며 시위대 간 충돌 양상도 거세져 20대 남성이 등에 칼을 맞아 중상을 입고 병원으로 실려 가는 일도 벌어졌다. 이날 충돌 과정에서 경찰관 2명을 포함해 양쪽 진영에서 모두 피투성이 부상자가 나왔고, 소속을 알 수 없는 총기 소지자 4명 등 최소 20명이 체포됐다고 <워싱턴 포스트>는 전했다.
트럼프 지지층이 거리로 나선 건, 트럼프가 대선 결과를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지난 13일 바이든의 조지아주 승리 확정으로 트럼프의 패색은 더욱 완연해지는 분위기다. 이미 바이든은 대선 승리를 확정할 매직넘버(270명)를 훌쩍 넘긴 306명의 선거인단을 확보한 상태다. 하지만 트럼프는 부정선거의 결과일 뿐이라며 소송으로 승자를 가리겠다는 입장이다. 그는 이날 직접 워싱턴 집회에 참가하진 않았으나 시위 현장을 지나며 지지자 독려에 나섰다. 그가 차창 밖으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자, 지지자들은 “4년 더”라고 외치며 환호하기도 했다.
하지만 트럼프의 버티기가 언제까지 통할지 미지수다. 당장 법원은 이날 9천명의 부재자투표 폐기 여부를 놓고 트럼프 캠프가 펜실베이니아주 몽고메리 카운티와 필라델피아 카운티에서 제기한 소송 6건을 포함해 애리조나와 미시간 등 핵심 경합주 3곳에서 모두 9개 소송을 기각·불기소 처분한 상황이다. 심지어 소송을 맡았던 대형 로펌 ‘스넬 앤 윌머’에 이어 ‘포터 라이트 모리스 앤 아서’마저 수임 철회 신청을 하는 등 두 손을 드는 분위기다. 하지만 트럼프는 이날 오랜 지인인 루디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을 대선 불복 소송을 이끌 새 책임자로 임명하며 끝까지 가보겠다는 태세다. 이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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