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민주당 대통령 당선자가 17일(현지시각) 국가안보 관련 브리핑을 들으며 생각에 잠겨 있다. 워싱턴/로이터 연합뉴스
가족 기업인 트럼프 그룹의 보험·금융사기 및 탈세 혐의, 불륜관계 폭로를 막기 위한 돈으로 입막음 의혹, 성범죄 및 명예훼손 소송, 취임 이후 사업체를 경영하고 외국 정부로부터 수백만달러의 수입을 얻은 혐의, 가족 유산을 둘러싼 손해배상 소송….
내년 1월2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퇴임하고 맞닥뜨리게 될 소송 및 수사 대상 목록이다. 백악관을 떠나게 되면 대통령에게 주어졌던 민·형사상 ‘면책특권’도 사라지게 된다. 대선 결과에 불복하는 소송을 내고 트럼프가 버티는 이유 중 하나다. 심지어 퇴임 뒤를 대비하기 위해 트럼프가 ‘셀프 사면’에 나설 가능성까지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취임이 가까워지면서, 트럼프에 대한 대규모 수사 여부 등이 바이든 당선자의 두통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 <엔비시>(NBC) 방송은 17일 바이든이 자신의 대통령직 수행 기간이 트럼프에 대한 수사로 소모되길 원치 않는다는 생각을 참모들에게 비공식적으로 밝혔다고 복수의 측근을 인용해 보도했다. 트럼프에 대한 수사가 가뜩이나 분열된 미국 사회를 더욱 분열의 소용돌이로 몰아넣게 될까봐 우려하는 것이다. 한 측근은 “바이든이 (이 문제가) 그냥 넘어가길 바란다는 뜻을 명확히 해왔다”고 밝혔다. 또 다른 측근도 “(바이든이) 트럼프 기소보다는 문제를 해결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쪽을 지향할 것”이라고 전했다. 바이든이 트럼프 정부의 과오를 따지기보다는 경제, 코로나19, 기후변화 및 인종 간 갈등 해소 등 다른 우선 순위에 집중하길 바라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민주당은 물론 바이든 지지층에선 트럼프에게 제기되고 있는 각종 의혹 등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고조되고 있다. 바이든 쪽 내부 토론에서도 ‘법대로’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하는 이들이 있을 정도다. 하지만 ‘통합’을 내세운 바이든 입장에선 미국 역사상 가장 분열된 구도로 치러진 이번 대선에서 트럼프를 찍은 7337만2958명(47.3%)의 유권자들의 생각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민주당 및 지지층의 기대에 부응하면서도 트럼프 지지층을 소외시키지 않고 국가를 통합하는 문제 사이에서 적절히 균형을 잡는 게 바이든에게 떨어진 과제가 된 셈이다.
바이든은 이런 논란을 피하기 위해 “법무부가 독립적으로 결정하도록 할 것”이라는 데 방점을 찍고 있다. “(바이든이) 연방 법집행 당국자들에게 누구를, 무엇을 수사하거나 해서는 안 된다는 식으로 지침을 내리지 않을 것”이라는 게 참모들의 전언이다.
실제로 바이든은 대선 토론회 과정에서 트럼프 기소 여부에 관한 결정은 법무장관에게 맡길 것이라고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아울러 어떤 이유로든 법무부에 특정 수사나 기소를 부추기거나 방해하는 등 부적절한 영향을 미치려 한 것이 적발될 경우 행정부의 그 누구라도 경질될 것임을 선언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할 것이라고 약속하기도 했다.
법무부와 거리두기를 하겠다는 이런 선언에는 트럼프에 대한 수사가 미진할 경우 지지층으로부터 쏟아질 비판을 어느 정도 막아주는 기능을 할 수 있다는 계산도 깔려 있다. 민주당 지지층이 그간 측근인 윌리엄 바 법무장관을 통해 사사건건 사건에 입김을 행사해온 트럼프를 비판해온 만큼, 법무부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대의 자체에는 동의할 것이라고 봤다는 것이다.
이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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