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각) 워싱턴 연방 의사당 앞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존 로버츠 연방대법원장 앞에서 취임선서를 하고 있다. 워싱턴/로이터 연합뉴스
수십만 환영 인파도, 전임자의 환대도 없는 전례 없는 미국 대통령 취임식이었다. 20일(현지시각)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취임식이 열린 워싱턴 연방 의사당 주변에는 날카로운 철조망이 둘러쳐졌다. 의사당과 인근 구역에 이르는 도로도 모두 폐쇄됐다. 2009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했을 때 관중 45만명이 운집했던 내셔널몰은 봉쇄됐으며, 그 자리에 성조기 19만1500개와 미국 50개 주 및 자치령의 깃발이 꽂혔다. ‘깃발의 들판’으로 이름 붙여진 이 공간은 코로나19와 보안 문제로 취임식에 참석하지 못하는 미 국민을 대표하기 위해 조성됐다.
미국을 대표하는 패션 브랜드 랠프 로런의 짙은 푸른색 정장을 차려입은 바이든 대통령은 오전 11시47분께 연방 의사당 서쪽 야외무대에서 취임선서를 했다. 퍼스트레이디 질 바이든 역시 미국 디자이너의 명품 브랜드 마카리안의 옅은 푸른색 계열의 울코트 정장을 차려입고 바이든 곁을 지켰다.
바이든은 1893년부터 가보로 전해져왔다는 성경에 손을 얹고 취임선서를 했다. 취임식이 열린 연방 의사당은 2주 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일으켰던 폭동의 무대였다. 바이든 대통령도 이를 의식해 “폭동을 일으킨 폭도들이 국민의 뜻을 잠재우고, 민주주의의 활동을 중단시키고, 우리를 이 신성한 땅에서 몰아내기 위해 폭력을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 지 며칠이 지난 지금, 우리는 여기에 서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19 방역과 경비 태세 강화로 취임식 참석 인원은 예년에 비해 극소수인 1천여명에 그쳤다. 바이든 대통령 부부는 물론 참석자 전원이 마스크를 착용했다. 취임식장 연단 뒤 좌석은 약 1.8m 간격으로 거리두기를 하며 배치됐다.
미국 시민 다수는 생중계 영상으로 취임식을 지켜봐야 했다. 일부 시민만이 삼엄한 통제 속에서도 워싱턴으로 와 제한 구역 밖에서 새 대통령의 취임을 축하했다. 플로리다주 올랜도에서 워싱턴으로 날아왔다는 이벳 베스트는 “나는 여기에 있어야 했다. 이건 역사다”라고 말했다고 <워싱턴 포스트>는 전했다. 앨라배마에서 취임식을 보기 위해 삼대가 함께 왔다는 티퍼니 웨이드는 <로이터> 통신에 “내 어깨에서 무게 1톤을 덜어낸 느낌”이라고 4년 만의 트럼프 퇴장에 안도했다. 트럼프 지지자의 일부가 이날 워싱턴에서 소규모 항의시위를 열었으나 우려했던 폭력 사태는 없었다. 미시간주에서 왔다는 트럼프 지지자 중 한명은 <로이터>에 “시위대 숫자가 적어서 실망했다”고 말했다.
취임식 뒤 바이든 대통령 부부는 알링턴 국립묘지에서 무명용사의 묘에 헌화했다. 버락 오바마, 조지 부시, 빌 클린턴 전 대통령 부부가 동행했다. 이후 대통령 전용차량을 타고 백악관 인근 재무부 청사까지 가는 길에, 악대가 앞장서고 경호원들이 차량을 호위했다. 간소하나마 거리 퍼레이드를 한 셈이다. 엄격한 출입통제 탓에 거리에는 퍼레이드를 반길 인파가 없었지만 바이든 대통령은 웃음 띤 얼굴로 여러 차례 손을 흔들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가끔 차단벽 너머 취재진과 뮤리얼 바우저 워싱턴 시장 등 일부 당국자에게 뛰어가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49분께 백악관에 입성했다.
조기원 기자,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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