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공화당 리즈 체니 하원의원이 12일(현지시각) 하원 의원총회 의장직에서 축출된 뒤 의사당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딕 체니 전 부통령의 딸이기도 한 체니 의원은 지난 1월6일 의사당 난입 사태와 관련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책임론을 제기하다가 의장직에서 축출됐다. 워싱턴/AP 연합뉴스
미국 공화당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선거 부정’ 주장을 반박하던 리즈 체니 의원을 당직에서 추방함으로써, 공화당의 트럼프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체니 역시 응전 태세를 강화해, 당의 분란이 격화될 전망이다.
체니 의원은 12일(현지시각) 하원 의원총회 의장직에서 축출된 뒤 기자들에게 “우리는 전직 대통령의 아주 위험스런 거짓말에 의해 뒤로 끌려갈 수는 없다”고 말했다고 <아에프페)(AFP) 통신 등이 보도했다. 그는 “우리는 진실에 기초해 앞으로 나아가야만 한다”며 “우리는 큰 거짓말도 포용하고, 헌법도 포용하는 두 가지를 동시에 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특히 체니는 “전직 대통령이 대통령 집무실 근처 어디에도 다시는 갈 수 없도록 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할 것”이라며, 트럼프의 대선 재출마를 막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앞서 공화당은 하원의회 총회를 열고, 체니를 총회 의장직에서 해임했다. 비공개로 열린 총회의 투표 결과는 공개되지 않았으나, 압도적 표차로 해임된 것으로 알려졌다. 딕 체니 전 부통령의 딸인 리즈 체니는 지난 1월6일 트럼프 지지자들의 의사당 난입 사태 이후 트럼프 탄핵안에 찬성하는 등 트럼프의 선거 부정 주장을 정면으로 비판해왔다.
트럼프는 체니에 대한 인신공격으로 응수했다. 그는 의원 총회 뒤 발표한 성명에서 “리즈 체니는 거칠고, 끔찍한 인간”이라며 “그는 정치나 우리나라와 관련된 좋은 품성이나 좋은 것이라곤 없다”고 비난했다.
당 지도부는 이번 사태가 공화당의 대선 불복으로 비화되는 것을 경계하고 나섰다. 케빈 매카시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는 이날 조 바이든 대통령과 상·하원 지도자 회동에 참석한 뒤 “나는 대선의 합법성에 의문을 갖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는 “그것은 모두 끝난 것”이라며 “우리는 오늘 대통령과 함께 자리를 같이 했다”고 말했다.
지도부의 수습 의지에도 불구하고 공화당의 내홍은 깊어지고 있다. 매카시 등 공화당 지도부와 의원 다수는 체니의 당직 축출은 내년 중간선거를 앞둔 당의 단합 문제라는 입장이다. 트럼프에 대한 체니의 비판이 당의 단합에 해를 끼쳤다는 설명이다. 이에 대해 반트럼프 의원들은 “체니를 당직에서 축출한 것은 공화당의 트럼프화만 가속한다”고 우려한다.
트럼프 탄핵에 찬성했던 아담 킨징거 의원은 “진실은 거짓말과 공존할 수 없다”며 “그런 것으로는 단합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단합이라는 말은 트럼프 지지층에 굴복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체니 등 반트럼프 진영은 이번 사태를 통해 당내에서 더욱 고립되고 소수화되는 양상이다. 체니 지지자들도 트럼프에 대한 그의 끈질진 반대에 불만을 표하고 있다고 <아에프페>가 전했다. 체니를 공화당 내의 원칙있는 보수적 목소리라고 평가했던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도 입장 변화를 보였다. 그는 이날 “체니는 전직 대통령에 대해 공화당 주류에서 벗어난 입장을 취했다”고 말했다.
체니가 지난 2월 의원 총회에서는 살아남았으나, 이번에는 축출된 사실도 당내 기류 변화를 반영한다. 당시 의원 총회에서는 트럼프 탄핵을 찬성한 체니의 의장직 박탈을 ‘반대 145 대 찬성 61’로 부결했다. 매카시 원내대표 등 지도부도 당시 체니의 당직 축출을 반대했다.
체니는 그 이후에도 트럼프 비판을 멈추지 않았고, 공화당 내부에서 축출 여론이 일었다. 특히, 체니가 <워싱턴 포스트>에 트럼프를 비판하는 기고를 내자, 스티브 스칼리즈 원내총무가 체니를 축출하는 조처에 나서기 시작했다. 매카시 원내대표도 최근 <폭스 뉴스>의 한 진행자에게 “체니에 대한 신뢰가 있었으나, 이제는 잃어버렸다”고 말하는 것이 공개되기도 했다. 그는 체니의 당직 축출 투표에 앞서 지난 10일 동료 의원들에게 “매일 과거를 다시 문제삼으며 소비하는 것은 우리가 잡아야 할 미래의 날들을 잃어버리는 것”이라며 “우리가 변화해야만 하는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체니의 후임으로는 온건파에서 트럼프주의자로 변신한 젊은 여성의원 엘리스 스테파닉이 낙점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지난 대선에서 바이든이 승리한 몇몇 주의 선거결과 인증을 반대한 바 있다. 당내의 우려로 스테파닉의 당 의장직 임명을 추인하는 투표일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