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을 탈출하려는 몇백명이 16일 카불 공항 활주로에서 미군 수송기 C-17을 따라 달리고 있다. 일부는 수송기에 붙어 오르려고 하고 있다. 카불/AP 연합뉴스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을 장악한 지 이틀째를 맞은 16일(현지시각) 시내의 모습은 차분함과 두려움, 불안감이 묘하게 공존하는 분위기라고 외신들이 전하고 있다.
탈레반이 시내 어디에서나 보인다는 점에서 카불은 분명히 달라졌다. 과거 아프간 경찰이나 군의 바리케이드가 있던 곳에서, 이제 탈레반이 검문소를 설치해 오가는 차량을 검문한다.
그러나 거리의 모습은 카불이 함락된 전날의 공황 상태가 진정된 분위기라고 <비비시>(BBC)가 전했다. 시내 중심가에서는 일상을 찾아가는 듯한 모습이 엿보인다. 거리를 다니는 차량이 별로 없고 대부분의 가게가 문을 닫았지만, 사람들의 표정에서 전날의 혼란을 찾아보긴 어렵다.
많진 않지만 여성들이 거리를 걸어 다니는 모습도 볼 수 있다. 파란 부르카를 쓰거나, 마스크에 스카프만 쓴 여성도 있었다. 혼자 다니는 여성도 있었는데, 과거 탈레반 정권 시절엔 꿈도 꿀 수 없었던 일이다. 그러나 현재 카불을 장악한 탈레반은 이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눈치라고 <비비시>가 전했다.
반면 <시엔엔>(CNN)은 자사 특파원이 탈레반을 취재하려 하자, 여성이라는 이유로 “옆으로 물러나라”며 쫓아냈다고 전했다. 또 거리는 조용하고, 카불의 호텔들이 틀어놓던 배경 음악마저도 끊겼다.
그럼에도 도시의 일상은 작동하는 것으로 보인다. 탈레반의 집권을 반감 없이 받아들이는 주민도 있고, 일부에선 탈레반 대원들에게 “안녕, 행운이 깃들길 빈다”며 인사를 하는 모습도 목격된다.
카불의 이런 분위기는 앞서 탈레반이 점령한 다른 도시에서도 느껴진다고 <시엔엔>이 전했다. 아프간의 북서부 도시 헤라트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이스마헬(40)은 “전체 도시가 일상을 찾아가고 있다. 사람들은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고 가게들도 모두 문을 다시 열었다”고 말했다. 그는 “전쟁이 끝나고 총성이 더는 울리지 않아 좋다고 만족해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전했다.
아프간 북부지방의 도시 쿤두즈에 사는 아티쿨라(31)는 지난주 <시엔엔> 인터뷰에서 “탈레반은 두려워 말라고 하지만 사람들이 여전히 두려워한다”면서도 사람들이 서서히 새로운 상황에 적응해 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어떤 여성들이 밖에서 부르카를 쓰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고 전했다. 그는 또 “탈레반이 교사들에게 학교로 돌아오라고 했다”며 남성 교사는 남자아이들만, 여성 교사는 여자아이들만 맡아 가르치게 됐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아프간의 관문 카불공항은 여전히 혼란과 절망의 연속이다. 공항으로 가는 2㎞ 남짓한 거리는 탈출 인파로 넘쳐났다. 많은 이들이 티켓과 여권도 없이 무작정 공항으로 달려왔다. 공항 출입문에서는 무장 탈레반이 공포를 쏘며 사람들을 해산시키려 애썼고, 사람들은 안으로 들어가려고 벽과 문, 심지어 가시철책에까지 매달렸다. 일부는 활주로까지 달려가 항공기에 타려고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모습도 목격됐다. 어떤 사람은 <시엔엔>에 “미군이 떠나고 나면 탈레반의 손에 처형될 것이 두렵다”고 말했다. 박병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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