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6월 두바이 군주 셰이크 모하메드 빈 라시드 알마크툼이 당시 아내 하야 빈트 알후세인과 함께 영국에서 열린 한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이혼한 아내와 양육권 소송을 하는 두바이 군주 셰이크 모하메드 빈 라시드 알마크툼(72)이 전처와 주변인들의 휴대폰을 해킹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그의 부하들이 영국에 있는 전처의 이웃집을 사려고 시도하는 등 심각한 스토킹 수준의 행태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가디언>은 세계적 거부인 셰이크 모하메드와 전처 하야 빈트 알후세인(47)의 양육권 소송을 담당하는 런던 고등법원이 셰이크 모하메드 쪽의 해킹 사실을 확인하는 평결을 내리면서 엄중한 경고를 했다고 6일 보도했다. 법원의 조처는 지난 5월에 이뤄졌으나, 언론에는 관련 자료가 뒤늦게 공개됐다.
앤드루 맥팔레인 판사는 셰이크 모하메드 쪽이 전처 하야뿐 아니라 전처의 변호사와 경호원 등 모두 6명의 휴대폰을 해킹했다고 밝혔다. 맥팔레인 판사는 하야의 휴대폰이 지난해 7·8월에 11차례 해킹당했다며, 이런 행위는 “영국 형법의 상습적 위반”이며 유럽인권조약에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해킹에는 이스라엘 업체가 만든 프로그램으로 최근 세계적으로 논란을 일으킨 ‘페가수스’가 이용된 것으로 파악됐다. 하야의 휴대폰에서 24시간 음성 녹음 분량의 데이터가 해킹당한 사례도 있다. 법원은 하야와 미성년 자녀 2명의 재산 청구에 대한 중요한 심리가 진행될 때 이 해킹이 이뤄졌다고 밝혔다.
맥팔레인 판사는 셰이크 모하메드 쪽의 행위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는 “드러난 사실들은 심각한 권력 남용에 해당한다”며 이 사안이 셰이크 모하메드의 자녀 접견권 판단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경고했다. 런던 경찰은 해킹에 대해 조사에 착수했으나 방법상 제한을 이유로 지난 2월 조사를 중단했다.
셰이크 모하메드의 사주를 받은 이들이 영국 버크셔에 있는 하야의 주택 옆집을 3천만파운드(약 485억원)에 매입하려 한 사실도 드러났다. 법원은 하야에 대한 감시나 압박 목적인 것으로 보고 하야의 집 주변 100m에 대한 접근 금지와 상공에 대한 비행 금지를 명령했다.
앞서 맥팔레인 판사는 2019년 셰이크 모하메드가 영국 케임브리지 등지에서 헬리콥터 등을 이용해 자신의 딸인 공주 2명을 납치했다고 밝힌 바 있다. 성년인 이들은 양육권 소송의 대상은 아니다. 2018년에는 한 공주가 아버지의 학대를 견디기 어렵다며 두바이에서 탈출을 시도하기도 했다.
전남편의 이런 행동에 불안을 호소해온 하야는 24시간 경호를 받고, 유사시 헬리콥터를 타고 도망칠 준비를 하며 살아왔다. <가디언>은 하야가 “스토킹당하는 것 같고, 어디에서도 안전하지 않은 것 같다”, “아이들이 나의 존재에 항상 끼어들어 있는 공포와 함께 사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압둘라 2세 요르단 국왕의 이복동생인 하야는 2004년에 셰이크 모하메드의 여섯번째 아내가 됐으며, 2019년에 영국 법원에 망명을 신청해 파문을 일으켰다.
영국 영토에서 두바이 군주가 계속 불법행위를 하는 것은 외교적 마찰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셰이크 모하메드는 두바이를 비롯한 토후국들이 연합한 아랍에미리트연합의 총리이기도 하다. 그는 호화 변호인단으로 소송에 대응하고 있으나 직접 영국 법원에 출석하지는 않고 있다. 그는 해킹 논란에 대해 “개인적 송사에 연루된 정부 수반으로서 이런 민감한 문제에 대해 (내 입장에서) 증거를 제공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면서도 “이번 평결은 불완전한 그림에 토대를 두고 있다”고 밝혔다.
이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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