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비아의 전 통치자 무아마르 카다피의 아들 사이프 이슬람 카다피(오른쪽에서 둘째)가 오는 12월24일 대선에 출마하려고 후보로 등록하고 있다. 트위터 갈무리
리비아를 42년 동안 철권 통치한 뒤 2011년 반군에게 피살된 무아마르 카다피 국가 수반의 아들이 대선에 출마한다. 그를 포함해 내전의 주요 세력 지도자들이 나서는 이번 대선을 통해 10년에 걸친 리비아의 무정부 상태가 끝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카다피의 아들인 사이프 이슬람 카다피가 12월24일 치르는 대통령선거에 후보로 등록했다고 <아에프페>(AFP) 통신 등 외신들이 14일 보도했다. 사이프는 아버지인 카다피의 집권 도중에 후계자로 인정되었다. 선거관리위원회는 이날 성명을 내고 “사이프 이슬람 카다피가 세바의 국가선관위에 대선 후보로 등록했다”고 발표했다.
리비아는 2011년 아랍의 봄 때 시작된 반정부 시위가 내란으로 발전해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이 시위로 그해 8월 카다피 정권은 무너졌고, 두달 뒤 카다피의 사망도 확인됐지만, 계속되는 내전으로 무정부 상태가 지속되는 상황이다. 이번 대선은 리비아 사상 첫 대통령 직접선거이다.
유엔(UN)이 이끄는 국제사회와 지난 3월 어렵게 구성된 잠정적인 통일정부는 이번 대선을 통해서 정통성 있는 정부를 구성할 계획이다. 리비아는 현재 국제사회에서 공인된 임시정부가 있는 수도 트리폴리 중심의 서부 세력과 이와 경쟁하는 리비아 국민군(LNA)이 관할하는 동·남부 세력으로 양분되어 있다.
이번 대선에는 임시정부의 압둘 하미드 드베이바 총리, 의회 의장인 아길라 살레, 동부 군벌인 리비아 국민군의 지도자 칼리파 하프타르도 출마할 것으로 예상된다. 내전의 주요 세력들의 책임자들이 모두 출마하지만, 내전이 종식되고 정통성 있는 통합 정부가 구성될지는 불투명하다.
유엔이 주도해온 리비아 평화 과정의 주요 고비인 이번 선거에 대해 리비아의 주요 세력과 주변 관련국들은 지지를 보내고 있다. 하지만 선거 규정과 일정을 놓고 경쟁하는 세력들은 여전히 알력을 보이고 있다. 지난달 19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리비아 사태 관련 국제회의에서는 이번 선거를 방해하는 세력들을 제재하기로 합의했만, 선거를 관리할 주체나 선거 이후 국정 운영과 관련한 세력 배분에 대해서는 여전히 합의가 나오지 않고 있다.
사이프는 카다피가 죽고 정권이 붕괴된 뒤 자신도 군벌들에게 체포돼 사형을 선고받았다가 나중에 6년형으로 감형됐다. 현재도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의해 전쟁범죄로 수배되어 있다. 그는 최근 들어서 <뉴욕 타임스>와 인터뷰를 하는 등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왔다.
사이프가 선관위에서 후보 등록을 하는 사진과 동영상 등이 현재 온라인으로 배포되고 있다. 그는 이 동영상에서 수염을 기르고 리비아 전통의상을 입고는 “불신자들의 증오에도 신은 언제나 그 뜻대로 이루신다”와 같은 코란 구절을 인용했다.
그의 대선 출마는 카다피 사망 이후 무정부 상태에 염증을 느껴온 이들 사이에서 꾸준히 거론돼왔다. 아버지의 독재정치와 반정부 시위에 대한 무력 진압을 지지해온 그가 등장하며 리비아 여론이 크게 분열되고 있다고 <비비시>(BBC)는 전했다. 사이프의 출마가 불안정한 선거 과정을 더 취약하게 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브라힘 프레이하트 카타르 도하연구소(분쟁해결학) 교수는 <알자지라> 방송에서 사이프가 “당선될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하며, 그 자신도 당선될 것으로 보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이번 출마는 자신이 정치 무대에 복귀했다는 정치적 메시지를 보내는 것”고 해석했다.
정의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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