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멘 주민들이 18일 후티 반군이 점령한 사나에서 사우디아라비아 주도 연합군의 공습으로 파괴된 건물 잔해를 둘러보고 있다. 사나/AP 연합뉴스
예멘의 후티 반군과 아랍에미리트(UAE)가 서로 공습을 주고받으며 중동 지역의 긴장이 다시 고조되고 있다. 최근 재개된 이란 핵협상과, 숙적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사이에 은밀하게 진행 중인 ‘대화 모색’ 움직임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예멘의 이슬람 시아파 무장단체인 후티 반군은 지난 17일 드론을 이용해 아랍에미리트의 수도 아부다비 공항 인근 연료탱크를 공격했다. 이 공격으로 인도와 파키스탄 출신 노동자 등 3명이 숨졌다. 아랍에미리트는 그날 밤 자국 수도를 겨냥한 이번 공격을 “간과할 수 없는 중대 사태”라고 규정하고 반격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에 따라 18일 새벽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가 주축이 된 연합군이 후티 반군이 장악하고 있는 사나를 공습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예멘 현지 언론을 인용해 이 공격으로 최소 14명이 숨지고 11명이 다쳤다고 전했다.
수니파 주요국들과 시아파 이란의 대리전 양상을 띠고 있는 예멘 내전에서 후티 반군은 아랍에미리트가 아닌 맹주 사우디를 주로 공격해 왔다. 아랍에미리트는 2014년 말 내전이 시작된 뒤 연합군의 일원으로 군사 개입에 나섰지만, 2019년 이후 군을 대부분 철수시킨 상태다. 상황이 변한 것은 지난 3일이었다. 후티 반군이 홍해 공역을 항해하던 아랍에미리트 화물선 라와비를 나포한 것이다. 아랍에미리트는 그에 대한 보복으로 예멘 남부를 거점으로 삼는 무장세력인 ‘거인 여단’(Giant Brigade)을 통해 후티의 거점인 샤브와와 마리브 유전지대를 공격했다. 이 과정에서 후티 반군은 샤브와를 빼앗긴 것으로 전해진다.
후티 반군은 이에 맞서 반격을 꾀했지만, 정부군의 강력한 저항에 밀려 고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나 전략연구소의 공동 설립자인 마지드 마드하지는 <시엔엔>(CNN)에 “아랍에미리트의 정부군 지원이 ‘게임 체인저’ 구실을 해서, 후티 반군을 화나게 했다”며 “이들은 아랍에미리트가 안전하다는 이미지를 깨뜨려 전략적 균형을 확보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실제, 후티 반군의 공보부 부장관인 나스루딘 아미르는 이번 공습에 대해 “아랍에미리트가 예멘 내전을 격화시킨 책임을 물은 것”이라며 말했다.
이번 군사행동이 더한층 이목을 끄는 것은 미묘한 타이밍 때문이다. 현재 이란은 2019년 미국의 일방적 탈퇴로 파기된 이란 핵협정(JCPOA)을 부활시키기 위한 협상을 시작했고, 사우디 등과 오랜 갈등과 대결을 뒤로하고 대화에 나서고 있다. 아랍에미리트는 지난 연말 전격적으로 고위급 인사를 이란으로 보내 대화의 물꼬를 텄고, 사우디도 지난해 이란과 여러 차례 외교적 물밑접촉을 하며 역내 정세와 갈등 관리 방안 등을 협의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문제는 이란이 이번 공격에 개입돼 있는지 여부다. 공교롭게도 후티 반군이 아부다비를 공습한 17일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이 후티 반군의 사절단을 면담했다고 레바논 언론 <알 마야딘>이 보도했다. 이란의 개입이 확인되면, 이란 외교는 신뢰를 상실하는 등 적잖은 타격이 불가피하다.
당장은 아랍에미리트, 사우디, 이란 모두 불똥이 엉뚱한 데로 튀지 않게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이고 있다. 아랍에미리트와 사우디는 성명을 내어 후티의 공격을 강력히 비난하면서도 이란에 대해선 언급을 피했다. 사이드 하티브자데 이란 외교장관은 성명을 내어 “군사 공격은 해법이 아니다”며 애매한 입장을 취했다. 그러나 이번 군사행동이 보복과 재보복으로 확대되면, 이란도 비난의 화살을 마냥 피하기는 쉽지 않다.
사태의 여파로 국제유가는 출렁였다. 18일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2월물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값은 전날보다 1.35% 상승한 배럴당 84.95달러에 거래됐고, 3월물 브렌트유 값은 전날보다 0.49% 오른 배럴당 86.48달러를 기록했다.
박병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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