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현지시각) 요르단강 서안지구의 팔레스타인 난민 캠프에서 무장한 팔레스타인인들이 요르단에서의 회담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에 참석하고 있다. 서안지구/로이터 연합뉴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고위급 회담을 열고 이스라엘의 서안지구 정착촌 논의를 중단한다는 성명을 내놨지만, 이스라엘 쪽이 이를 곧바로 부인했다. 서안지구에서는 팔레스타인 괴한의 유대인 살해와 이에 따른 보복 방화가 발생하는 등 폭력 사태가 계속되고 있다.
26일(현지시각)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이날 요르단 남부 아카바에서 회담이 끝난 뒤, 양국 사이의 긴장감을 완화하기 위해 협력한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특히 이스라엘이 요르단강 서안지구에서 앞으로 4개월 동안 유대인 정착촌 논의를 중단하고 6개월 동안 정착촌 합법화 조치도 멈추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스라엘의 서안지구 정착촌 확대 정책은 양국 긴장감이 최근 들어 극도에 달한 원인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이 회담은 3월 말부터 시작되는 이슬람의 라마단 기간을 앞두고 폭력 사태가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는 우려를 잠재우기 위해 진행됐다. 회담에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외에도 미국, 요르단, 이집트의 고위 관리들이 중재를 위해 참석했다. 중재국들은 이번 회담과 성명의 내용을 “양쪽의 관계를 다시 세우고 심화하는 주요한 진전”으로 평가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하지만 성명 내용은 곧바로 뒤집혔다. 같은 날 바로 이스라엘 재무장관 베잘렐 스모트리히는 “서안지구에서의 정착촌 활동 동결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나는 그들이 요르단에서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단 하루도 정착촌 계획에 동결이 없을 거라는 점은 알고 있다”고 밝혔다. 극우파로 꼽히는 그는 현재 재무장관과 함께 서안지구 정착촌 건설도 담당하는 인물이다.
회담에 참석한 이스라엘 국가안보보좌관 차치 하네그비도 정착촌과 관련한 기존의 결정에는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으며,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도 회담에 참여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비난하고 이번 회담이 “가치가 없다”고 했다. 양측 합의가 나오자마자 사실상 무용지물이 된 셈이다.
이런 가운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유혈사태는 계속되고 있다. 이스라엘 당국에 따르면 26일 요르단강 서안지구 정착촌에 살던 이스라엘 민간인 2명이 팔레스타인 괴한의 총격을 받고 숨졌다. 이는 지난 22일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 저항세력을 공격해 11명이 숨진 것에 대한 보복 성격으로 보인다. 민간인 사망 후 정착촌에 사는 이스라엘인들이 다시 팔레스타인인의 집에 불을 지르는 등 공격과 보복이 오갔다.
<아에프페>(AFP) 통신은 “이번 폭력 사태는 요르단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회담이 열리는 가운데 발생했다”며 “올해 초부터 양쪽의 분쟁으로 팔레스타인에서 63명, 이스라엘에서 11명의 희생자가 나왔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말 이스라엘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이끄는 극우 정부가 들어서고 정착촌 확대 등 강경한 정책을 내세운 것이 영향을 미쳤다고 통신은 전했다.
조해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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