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주민들이 2일 요르단강 서안 나블루스에서 “이스라엘의 재판없는 행정구금이 부당하다”며 87일간의 옥중 단식투쟁 끝에 숨진 카데르 아드난(45)의 사진을 들고 항의 시위를 하고 있다. 나블루스/EPA 연합뉴스
팔레스타인 재소자가 무려 87일이나 옥중 단식을 벌인 끝에 숨진 데 항의해 하마스 등이 이스라엘에 로켓 공격을 퍼부었다. 이스라엘도 곧바로 보복에 나서며 이 지역 내 갈등이 다시 고조되고 있다.
가자 지구를 실효지배하고 있는 무장정파 하마스와 이슬라믹 지하드 등은 2일(현지시각) 팔레스타인 재소자 카데르 아드난(45)의 사망에 항의해 이스라엘 남부도시 스데로트 등에 적어도 26발의 로켓을 발사해 세 명이 다쳤다고 <워싱턴 포스트>가 보도했다. 이스라엘도 바로 탱크와 전투기를 동원해 하마스 등의 근거지를 겨냥해 보복 폭격을 가했다.
이번 사건은 지난해 말 이스라엘에 극우 시오니즘 정권이 들어선 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 긴장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일어났다. 올해 들어서만 양쪽 간의 유혈충돌로 팔레스타인 주민이 적어도 95명, 이스라엘 주민과 다른 외국인이 적어도 17명 숨졌다.
이번 사건의 빌미가 된 팔레스타인 재소자 아드난은 아홉 아이의 아버지이자 제빵사였고, 이슬라믹 지하드의 조직원이었다. 지난 2월 테러를 지원한 혐의로 이스라엘 당국에 체포됐다. 이후 자신의 “구금이 부당하다”며 단식투쟁에 들어갔지만, 87일 만인 2일 옥중에서 의식을 잃은 채 발견돼 병원에 옮겨졌으나 숨졌다.
팔레스타인 재소자가 옥중 단식투쟁으로 숨진 건 1992년 이후 처음이다. 아드난은 과거에도 이스라엘 당국에 의해 10차례 넘게 구금됐고, ‘부당한 구금’이라고 주장하며 옥중 단식투쟁을 벌인 것도 알려진 것만 5차례나 된다.
이번 단식투쟁은 이스라엘 당국이 팔레스타인 주민을 재판도 없이 행정처분만으로 무기한 체포·구금하는 관행을 겨냥한 것이었다. 이에 대해선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재판 받을 권리 등을 부당하게 빼앗는 인권침해”라는 지적이 이어져 왔으나, 이스라엘 당국은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이렇게 체포 구금한 이들의 수는 1년 전 526명보다 거의 두배 늘어난 1천여명에 달한다. 인권단체들은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대규모 봉기했던 1987년과 2000년 ‘인티파다’ 이후 가장 많은 숫자라고 밝혔다.
더구나 최근 팔레스타인 재소자에 대한 처우도 나빠진 것으로 전해진다. 이스라엘의 극우 정치인인 이타마르 벤그비르 치안장관(국가안보장관)은 지난 2월 테러 혐의로 수감된 팔레스타인 재소자에게 더는 “혜택과 방종”을 허용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또 재소자의 자율적인 빵집 운영을 금지하고 샤워시간을 4분으로 줄이게 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스라엘 교도 당국은 이날 성명을 내어 아드난이 “테러조직 가담, 테러 지원 및 선동” 혐의로 기소됐으며 10일 열릴 예정이던 재판을 기다리는 동안 치료를 거부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의 변호인과 인권단체는 그를 병원으로 옮겨 치료해야 한다고 요구했으나, 이스라엘 당국이 거부했다고 반박했다. 또 가족들의 면회 요청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밝혔다.
인권단체들은 옥중 단식투쟁은 팔레스타인 주민이 자신을 보호할 합법적 수단을 대부분 빼앗긴 상황에서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저항 수단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인권을 위한 이스라엘 내과의사회’는 성명을 내어 “아드난은 그와 팔레스타인 주민에 대한 억압에 항의하는 마지막 비폭력 수단으로 단식투쟁을 선택했다”고 밝혔다. 모하마드 쉬타예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총리도 소셜미디어에 이번 사건은 “고의적인 살해”라며 “(부당한 구금에서) 풀어달라는 요구를 거절하고 건강 상태가 심각해졌음에도 의료 치료를 받게 하지 않고 감옥에 가둬 두는 방식으로” 이스라엘 당국이 그를 죽였다고 썼다. 가자지구에 있는 재소자 단체에 따르면 1967년 이래 이스라엘의 감옥에서 숨진 팔레스타인 주민은 237명에 이른다.
박병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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