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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중동·아프리카

단돈 10달러에 팔려간 꿈…“학교에 가고 싶어요”

등록 2006-05-07 19:14수정 2006-05-07 21:11

인신매매된 뒤 강제로 고기잡이 노동을 하다 구출된 아이들이 가족과 재회하는 행사에서 힘든 노동 뒤의 평안을 상징하는 전통 춤을 추고 있다.
인신매매된 뒤 강제로 고기잡이 노동을 하다 구출된 아이들이 가족과 재회하는 행사에서 힘든 노동 뒤의 평안을 상징하는 전통 춤을 추고 있다.
[인권현장을 가다] 서아프리카
인신매매 구출된 어린이들의 ‘슬픈 학예회’

그것은 ‘슬픈 학예회’였다.

적도 하늘에 뜬 해가 아프리카의 메마른 대지를 한껏 달궈놓은 정오, 성당 앞마당 아카시아나무 아래서 아이들이 맨발로 땅을 박차며 전통 춤 ‘라꾹’을 췄다. 전통 타악기가 경쾌하게 장단을 맞춰줬지만, 지켜보는 부모들의 얼굴엔 기쁨도, 슬픔도 아닌 검은 무표정이 자리잡고 있었다.

지난달 25일 서아프리카 가나의 수도 아크라에서 북동쪽으로 1시간30여분을 달려 도착한 아베이메 지역 세이크리드 하트 성당에선 인신매매를 당해 강제로 고기잡이를 하다 구출된 이 지역 어린이 39명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는 의식이 치러지고 있었다. 국제이주기구(IOM)의 도움으로 구출된 어린이들은 두 달 동안 재활 과정을 마친 상태였다.

고기잡이배 노예 노동 어린이 39명
국제이주기구 도움으로 부모 품에
“긴 노동 긑났으니 즐겁게 놀자”
라꾹춤 추며 악몽 끝내는 ‘의식’

아이들은 그들이 겪은 일을 작은 연극으로 만들어 선보였다. 이들은 인근 볼타 호수의 어부들에게 팔려갔다. 작은 고깃배를 타고 호수로 나가 새벽 5시부터 저녁때까지 수없이 물속으로 뛰어들어 ‘라피아’라는 물고기를 잡아올렸다. 노와 채찍으로 얻어맞고, 말라리아 등 풍토병에 걸리기도 했다. 알루(15·남)는 “물속에 그물이나 어항을 설치하고 다시 거둬들이는 일을 했는데, 함께 일하던 친구가 그물에 발이 걸려 나오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런 생활을 2년 동안 버텨낸 알루는 “하루빨리 그 기억을 잊고 싶다”고 했다. 길게는 6년을 일한 아이도 있었다. 안젤리나(6·여)나 빌리브(6·여)처럼 물일을 하기에 너무 연약한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이 잡아온 고기를 이고 시장에 나가 팔아야 했다.

강제노동에서 구출된 한 어린이가 어머니의 품에 안겨 웃고 있다.
강제노동에서 구출된 한 어린이가 어머니의 품에 안겨 웃고 있다.

아이들의 연극이 인신매매 과정을 묘사하는 대목에 이르자, 부모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아이들을 단돈 10달러에 판 것은 다름 아닌 부모들이었기 때문이다. 어부들은 선불금 10달러에 해마다 50달러를 주겠다고 약속했지만, 대개는 선불금만 주고 말았다. 아이들은 그만큼 값싼 노동력이었다.


강제로 고기잡이 노동을 하다 구출된 곤프레드, 빌리브, 완다(앞줄 왼쪽부터) 남매가 어머니와 만나고 있다.
강제로 고기잡이 노동을 하다 구출된 곤프레드, 빌리브, 완다(앞줄 왼쪽부터) 남매가 어머니와 만나고 있다.
이 지역 교사인 마트리아스 아티아나는 “많은 가정이 자녀를 많게는 10명 넘게 두지만 가난 때문에 제대로 먹이지도 못하는 실정”이라며 “부모들 대부분은 아이가 고기잡이를 하면서 학교에도 다니는 등 더 나은 생활을 할 것이라는 잘못된 믿음 탓에 아이를 보낸다”고 말했다.

가나에서 어린이 인신매매를 금지하는 법은 지난해에야 제정됐다. 가나의 전통사회에서 어린이는 “눈만 있고 머리는 없는 존재”라고 한다. 어른들에게 말대꾸해선 안 되며 시키는 대로 행동해야 한다. 또 아이를 판 부모보다는 가난이 죄라는 인식도 퍼져 있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경찰 관계자는 부모들에게 “앞으로 또다시 아이를 팔면 감옥에 갈 줄 알라”고 엄포를 놓았지만, 아직도 이 법이 강력하게 집행되지는 않고 있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전세계적으로 170만명쯤 되는 어린이들이 인신매매를 당하고 있다고 추정한다. 물론 아프리카는 어린이 인신매매가 아주 심각한 지역의 하나다. 지난해 유엔아동기금(유니세프) 보고서는 아프리카 국가의 80%에서 국경 내 인신매매가 이뤄지고 있으며, 일부는 유럽과 중동으로 ‘수출’되기도 한다고 밝혔다. 인신매매를 당한 어린이들은 고기잡이말고도 시장에서 물건을 나르거나 거리에서 물건을 파는 일, 광산 노동, 구걸, 가정부 일, 성매매 등을 강요당하고 있다.

국제이주기구는 가나에서 지난 2002년 인신매매 어린이 구출 사업을 시작해 이날까지 576명의 아이를 부모 품으로 돌려보냈다. 구출된 아이들은 우선 아크라에 있는 재활센터에서 심리치료와 함께 읽기·쓰기 등 기본교육을 받는다. 두 달 전만 해도 공용어인 영어를 읽을 줄 모르던 아이들이 이날은 자신이 읽은 성경 구절을 암송해 발표하기도 했다.

노예나 다름없는 생활 끝에 다시 만나는 부모들 앞에서 아이들은 라꾹 춤을 추었다. 하루종일 노동에 지친 이들이 “긴 노동이 끝났으니 즐겁게 놀자”는 뜻으로 저녁에 추는 전통 춤이라고 한다. 아이들은 긴 악몽의 끝을 그렇게 자축했다. 그들은 이제 물속으로 뛰어드는 대신, 학교에 다니면서 각자의 아름다운 꿈을 향해 달려갈 수 있을 것이다. 알루는 평소 꿈꾸는 음악가가 될 수도 있고, 재활센터에서 ‘축구짱’이었던 펠릭스(10·남)는 가나 대표팀 선수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빈곤이 해결되지 않으면 이들은 언젠가 다시 팔려갈지도 모른다. 또다른 알루와 펠릭스, 안젤리나와 빌리브 들이 학교 대신 거친 노동의 현장으로 내몰릴지 모른다. 아직도 고기잡이에 내몰리고 있는 아이들의 수조차 파악되지 않았고, 국제이주기구의 구출 프로젝트는 계속되고 있다.

알루는 ‘부모를 만나 기쁘냐’는 질문에 “엄마·아빠가 나를 학교에 보내지 않으려고 팔았다는 걸 안다”며 “학교에 다니고 싶은 생각뿐”이라고 답했다. 모든 의식이 끝난 늦은 오후, 교복과 학용품이 든 가방을 하나씩 선물로 받아든 아이들은 혹은 기쁜 얼굴로, 혹은 무덤덤한 얼굴로 각자 부모의 손을 잡고 먼지 풀풀 날리는 귀갓길에 올랐다. 아프리카의 ‘슬픈’ 태양은 좀처럼 식을 줄을 몰랐다.

강제로 고기잡이 노동을 하다 구출된 아이들이 가족과 만나는 행사에서 자신들이 겪은 강제 노동을 재연하는 연극을 하고 있다.
강제로 고기잡이 노동을 하다 구출된 아이들이 가족과 만나는 행사에서 자신들이 겪은 강제 노동을 재연하는 연극을 하고 있다.

재활센터 생활을 마치고 가족과 만나러 떠나는 한 피해 어린이가 차창 안에서 재활센터 사람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재활센터 생활을 마치고 가족과 만나러 떠나는 한 피해 어린이가 차창 안에서 재활센터 사람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인신매매 당한 어린이의 구출과 재활을 위해 활동하고 있는 국제이주기구에 도움을 주실 분은 국제이주기구 서울사무소로 연락하시면 됩니다.
(02) 6245-7647, www.iom.or.kr

아크라(가나)/글·사진 박용현 기자 pi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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