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내무 등 요직 빈자리…내각 정파갈등이 원인
폭력사태 여전…‘수니파 저항 약화’ 미 전략 의문
폭력사태 여전…‘수니파 저항 약화’ 미 전략 의문
“미국 관리들은 이라크 새 정부가 ‘민주주의의 승리’라고 열심히 홍보하고 있지만 이라크인들은 환호하지 않는다.”
총선 뒤 5개월의 험난한 줄다리기 끝에 탄생한 이라크 새 정부에 대한 시사주간지 <타임>의 평가다. “이라크인들은 야만적 압제로부터 선거를 통해 모든 목소리가 반영된 정부로 전진한 것을 자랑스러워할 것”이라는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의 평가와는 정반대다.
이라크 의회는 20일(현지시각) 누리 알말리키 총리가 제출한 거국내각 구성안을 승인했다. 2003년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해 후세인 정권을 축출한 지 3년여 만에 새 헌법과 총선에 기반한 ‘주권 정부’가 등장한 셈이다. 하지만, 새 내각은 정파 간 갈등 때문에 국방·내무·국가안보 장관 등 안보를 담당할 요직 세 자리를 채우지 못했다. 일단 시아파인 알말리키 총리가 내무장관 대행, 수니파인 살람 알주바이에 부총리가 국방장관 대행, 쿠르드족인 바르함 살레 부총리가 국가안보장관 대행을 맡았고, 최종인선은 미뤄졌다. 알말리키 총리가 새 정부의 핵심과제로 내세운 외국군 철수와 치안회복 등의 구호에는 어울리지 않는 출발이다.
새 정부 출범으로 폭력사태 종식의 계기를 찾을지도 의문이다. 이번에 임명된 36명의 장관직은 다수파인 시아파가 17석, 수니파와 쿠르드족이 각각 7석, 세속주의자 연합이 5석씩 나눠가졌다. 매장량 세계 2위의 원유를 관장할 석유장관에 임명된 저명한 핵 과학자 후사인 알샤흐리스타니(시아파)는 석유산업과 관련된 경험이 전혀 없다. 바얀 자베르 재무장관은 이전 과도정부의 내무장관으로 시아파 민병대를 지원해 종파 간 갈등을 악화시켰다는 비난을 받은 바 있다. 알말리키 총리도 유력 시아파 연합이 지명한 후보라는 것 외에는 행정 경험이 거의 없다.
첫 각료회의에서 알말리키 총리가 “테러리스트들에 맞서 모든 힘을 사용할 것”이라고 강조한 21일 하루 동안 바그다드에서만 경찰들이 애용하는 식당 등에서 3건의 강력한 폭탄테러가 일어나 최소 19명이 숨지고 57명이 다치는 등 유혈사태가 멈추지 않았다. 정부가 출범한 20일에도 이를 비웃듯 이라크 곳곳에서 폭력사태가 이어져 최소 30명이 사망하고 68명이 다쳤다.
<뉴욕타임스>는 수니파를 정치무대로 끌어들여 수니파 저항세력을 약화시킨다는 미국의 전략은 전혀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으며, 시아파 민간인과 사원을 겨냥한 공격과 종파 간 보복이 계속되고 있다고 전했다. 영국의 <인디펜던트>는 이라크의 현재 모습이 종교·민족 간 내전을 겪은 90년대 보스니아 상황을 닮아가고 있다고 보도했다.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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