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ㆍ레바논 침공이 중동지역의 정치지형에도 큰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이스라엘은 지난달 25일 팔레스타인 무장세력의 자국 병사 납치 사건에 대한 응징으로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을 공격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또 지난 12일 레바논 내 시아파 정당인 헤즈볼라가 자국 병사 2명을 납치한 것에 맞서 레바논에 대한 전면 공세에 돌입함으로써 자국에 적대적인 이슬람권의 2대 정치세력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는 형국이 됐다.
군사적으로는 이스라엘의 압도적 우세 속에서 진행되는 이 싸움은 반 이스라엘 투쟁을 주도해온 헤즈볼라가 뜨는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이집트를 비롯한 주요 아랍권 국가에서는 연일 헤즈볼라를 지지하는 시위가 펼쳐지면서 헤즈볼라에 대한 아랍권 대중의 지지가 급속히 확산하고 있고, 이스라엘 병사 납치공격을 지휘한 헤즈볼라의 하산 나스랄라 지도자는 아랍ㆍ이슬람권의 최고 영웅으로 부상했다.
이집트 독립신문인 알-우스부아의 무스타파 바크리 편집장은 "우리 모두는 나스랄라를 지지한다"며 헤즈볼라는 이스라엘을 견제할 수 있는 하나의 정치세력으로 인식되고 있다고 말했다.
헤즈볼라의 부상은 이스라엘의 레바논ㆍ팔레스타인 침공을 명확히 비판하지 않거나 헤즈볼라에 이번 사태의 책임을 돌린 이집트, 요르단, 사우디 아라비아 등 일부 아랍권 정권들에는 큰 부담이 되고 있다.
이집트와 요르단은 1967년의 제3차 중동전쟁 직후 열린 아랍연맹(AL) 회의에서 채택된 3불(不) 정책(불강화, 불협상, 불승인)을 깨고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차례로 맺어 아랍권에서 "배신국가"로 인식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이들 정부가 또다시 이슬람 세력을 공격하는 이스라엘을 단호하게 비판하지 않음으로써 이슬람주의자들에 의한 반정부 투쟁이 힘을 얻을 가능성이 커진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사우디 변호사인 바셈 알림은 한 언론 회견에서 헤즈볼라에 사태 악화의 책임을 돌린 사우디 정부의 견해에 일반 사우디 국민이 공감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레바논 사태와 관련해 보여준 사우디 정부의 시각이 이슬람 세력의 반정부 투쟁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해 정권 안보에도 영향을 줄 수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분석가들은 미국과 이스라엘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인 아랍권 정부들은 레바논 사태의 후유증을 겪게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이집트를 비롯한 아랍권에 광범위한 조직망을 갖고 있는 무슬림형제단은 이스라엘을 상대로 싸우는 하마스와 헤즈볼라에 지지입장을 밝히면서 이스라엘을 수동적으로 지지하고 있는 아랍권 정부들을 강력히 규탄하고 나서 아랍권 대중들의 반정부 투쟁을 예고했다.
이와 관련, 리처드 코헌 워싱턴 포스트 칼럼니스트도 사우디 아라비아, 이집트, 요르단 및 일부 아랍권 정부가 헤즈볼라를 규탄했지만 이들 나라의 국민이 정부와 견해를 같이한다고 보지 않는다고 진단했다.
반면에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격을 비난하며 이스라엘과 외교적 대립전선을 구축한 시리아와 이란은 미국의 눈치를 보지 않고 이슬람권의 목소리를 제대로 내는 나라로 인식되면서 중동 이슬람권의 주도국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번 사태는 적대적인 이슬람권 국가들로 둘러싸인 이스라엘의 고립을 고착화해 이스라엘의 양보 없이는 실현이 불가능한 향후의 중동 평화 과정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또 이스라엘 편을 드는 미국에 대한 아랍ㆍ이슬람권 대중의 반발정서가 심화되는 계기로 작용해 미국의 중동 정책이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집트 야당지인 알-와프드는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 중단을 촉구하는 유엔 안보리 결의안 채택을 미국이 방해했다고 지적한 뒤 아랍ㆍ이슬람권에서 미국이 이미지를 제고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이스라엘을 일방적으로 지지하는 태도를 버리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박세진 특파원 parksj@yna.co.kr (카이로=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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