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로마의 이탈리아 외무부 청사에서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모인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 로마노 프로디 이탈리아 총리(왼쪽부터) 등이 얘기를 듣고 있다. 로마/AP 연합
미국 “헤즈볼라 무장해제 먼저”…유럽 “즉각적인 정전 우선”
이스라엘 “남부 레바논 재점령 뒤 완충지대 세울 것”
이스라엘 “남부 레바논 재점령 뒤 완충지대 세울 것”
미국과 유럽, 중동 나라들과 유엔이 26일 이탈리아 로마에 모여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사태 수습책을 논의했지만, 미국이 즉각적인 정전에 난색을 나타내 해법 마련에 실패했다.
이날 회의에서 미국을 제외한 유럽연합, 중동, 유엔을 대표하는 대부분의 참가자들은 ‘즉각 정전’과 유엔의 주도적 구실을 강조했다. 그러나 미국은 헤즈볼라의 무장해제와 시리아의 책임을 강조하며 다른 목소리를 냈다.
이스라엘은 이날 레바논 남부를 재점령해 ‘완충지대’를 설정하겠다는 계획을 내놨고, 헤즈볼라는 정전을 제안했다.
로마회의, 다국적군 논란=5시간의 회의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 발표된 성명은 “회담 참가국들은 현재의 적대행위를 끝내고 즉각적으로 정전에 이르기 위해 가장 긴급한 노력을 벌여야 한다는 뜻을 나타냈다”고 밝혔다. 성명은 정전이 “영구적이며 지속가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날 회의는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등에 대해 ‘즉각 정전’을 요구하는 데 합의하지 못하고 이의 실천을 위한 다국적군 구성도 결론내지 못해 사실상 실패로 돌아갔다.
이날 회의에서 유럽 및 중동 대표들과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 등은 즉각적인 정전 뒤에 정치적 문제들을 논의할 것을 제안했지만,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은 헤즈볼라의 항구적 무장해제를 앞세우며 대립했다고 <시엔엔>(CNN)이 보도했다. 라이스 장관은 기자회견에서도 “이 지역(중동)에서는 수많은 정전 약속이 파기됐다”, “시리아는 (레바논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어겼다”며 헤즈볼라와 시리아의 책임을 부각시켰다.
이에 푸아드 시니오라 레바논 총리는 “헤즈볼라는 레바논의 정당이고, 이스라엘 점령지의 회복에 중요한 구실을 했다”며, 이스라엘의 “잘 준비된 보복”이 사태의 본질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회의에서도 이스라엘의 “야만적 파괴행위”를 즉시 중지시켜 달라고 호소했다.
회의 참가국들은 레바논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즉각 실시한다는 데는 합의했다.
라이스 국무장관은 “앞으로 며칠간 여러 나라간의 회담이 열릴 것”이라며 “여기서 다국적군 구성 문제가 논의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르몽드>와의 회견에서 나토군을 레바논에 파견하면 “서방 세력의 군대”로 인식될 것이라고 말해, 미국이나 이스라엘이 선호하는 나토군 파견에 반대의 뜻을 나타냈다.
이스라엘, 남부 레바논 재점령=아미르 페레츠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25일 다국적군이 배치될 때까지 이스라엘 지상군이 레바논 남부 일부를 점령한 뒤 ‘완충지대’로 만들어 관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스라엘은 국경에서 레바논 쪽으로 10㎞까지 진격해 헤즈볼라 병력을 몰아낸 뒤, “이곳을 침범하면 발포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스라엘 지상군은 레바논 남부에서 헤즈볼라와 치열한 교전을 벌여 마을 두 곳을 점령하고 북쪽으로 진격하고 있다. 이스라엘 관리들은 다국적군이 들어올 때까지 몇주 동안 이스라엘군이 이곳을 점령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다국적군 배치가 늦어지면 점령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뉴욕타임스>는 보도했다. 이스라엘은 1978년부터 네 차례에 걸쳐 레바논을 침공하거나 점령했다.
한편, 헤즈볼라는 26일 로마회의의 합의 도출이 실패로 돌아간 뒤 즉각 정전과 수감자 및 포로 교환을 요구했다.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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