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논 적십자사 직원들과 민방위 대원들이 30일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카나마을에서 희생된 어린이들의 주검을 옮기고 있다. 카나/AP 연합
잠옷입은 채 숨진 아이들…
폐허엔 60여 주검, 8명만 생존
피난 못간 빈곤층·노약자 ‘희생’
폐허엔 60여 주검, 8명만 생존
피난 못간 빈곤층·노약자 ‘희생’
이스라엘군 ‘카나 공습’ 참상
다섯살도 안 돼 보이는 소년은 이미 생명을 잃은 채 축 늘어져 들것에 실려나오고 있었다. 30일 새벽(현지시각) 이스라엘군의 레바논 남부 카나마을 폭격으로 붕괴된 3층 건물의 잔해에서 발견된 소년의 머리카락엔 회색 먼지가 가득했다. 이 소년은 폭격 현장에서 발견된 8번째 희생자라고 미국 시사주간 〈타임〉이 전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 취재진이 참사 현장에서 본 것은 바닥에 줄지어 누워있는 주검들이었다. 한 청년의 주검에는 담요가 덮여 있었지만, 팔만은 수직으로 솟아올라 있었다. 손가락은 폭탄이 떨어진 하늘을 가리키고 있었다.
엠뷸런스 근처에는 다른 주검을 놓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아이들 주검들을 겹쳐 쌓아놓았다. 4살쯤으로 보이는 남녀 아이들은 잠옷을 입은 채 죽어 있었다. 건물 잔해 속에는 이제는 다시 찍을 수 없는 가족사진들이 흩어져 있었다. 많은 주검들은 지하실 벽쪽에 등을 기대고 웅크려 있는 상태로 발견됐다고 신문은 전했다.
이스라엘 침공 이래 최대 규모 민간인 희생자가 발생한 곳은 카나마을 외곽 언덕에 있는 압바스 하셈 소유의 3층 건물이다. 하셈은 이 건물을 자신의 일가족과 샤호브 일가족의 피난처로 내놓았다. 두 가족은 지난 2주간 인근 티레로 피신할 방법을 찾았지만 1000달러나 하는 택시요금을 낼 여유가 없었다. 95살 노인부터 어린이들,장애가 있는 이들이 포함된 이들 가족은 피난을 떠나기엔 너무 식구들이 많았고 병약했다. 그들이 살기 위해 마지막으로 선택한 피난처는 결국 그들의 무덤이 되버렸다.
영국의 〈비비시〉는 카나마을 인구의 10분의 1이 이미 피난을 간 상태이며, 빈곤층과 몸을 움직일 수 없는 노약자들 뿐이라고 30일 보도했다.
목격자들은 몇 분 간격을 두고 3층 건물에 두 번의 폭격이 있었다고 증언한 것으로 〈가디언〉은 전했다. 첫번째 폭발 후 몇몇이 건물을 빠져나와 다른 곳으로 이동해 살아남았지만, 대부분은 두번째 폭발과 함께 목숨을 잃었다.
생존자인 아브라힘 살후브는 “폭격 후 연기가 자욱한 데다 어두워 새벽까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며 “우리는 다른 이들을 도와줄 수 없었다”고 울부짖었다. 티레에 있던 국제적십자가 참사 소식을 들은 시각은 첫 폭격이 있은 지 6시간 뒤인 오전 7시였다. 하지만 적십자는 이스라엘군이 도로 곳곳을 폭격하는 바람에 카나마을까지 가는 데 먼길을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고 신문은 전했다. 30일 밤, 60구 이상의 주검이 폐허에서 발견됐으며, 그 중 34명은 어린이였다고 신문은 보도했다. 이 참사의 현장에서 살아남은 것은 오직 8명 뿐이다 티레의 한 병원으로 옮겨진 생존자 누르 하셈(13)은 “자고 있는데 폭탄이 우리에게 떨어졌다”고 사고 당시를 기억했다고 〈타임〉이 전했다. 누르는 폭탄이 터진 뒤 12살,7살,9개월 된 세 남동생들을 보지 못했다며 울기 시작했다. 또다른 생존자이자 장애인인 모하메드 살후브(41)는 〈타임〉 취재진에게 누르의 동생들이 모두 숨졌다고 작은 소리로 귀띔했다. 모하메드 눈에서도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도 6살난 딸과 여동생, 남동생을 잃었다. 30일(뉴욕 현지시각)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카나마을 학살에 대해 ‘극심한 충격과 비통함’을 느낀다는 내용의 의장성명을 채택했다. 하지만 이스라엘을 비난하는 내용은 어디에도 없었다. 이스라엘군은 헤즈볼라가 카나에서 로켓을 발사했기 때문에 폭격했고 그 건물에 민간인들이 있는지 몰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카나마을 주민인 핫산 파라즈는 “헤즈볼라는 카나마을에 들어오지 않았다”고 말했다고 〈뉴욕타임스〉가 30일 보도했다. 박현정 기자, 외신종합saram@hani.co.kr
한 레바논인이 30일 이스라엘군의 카나마을 공습으로 붕괴된 건물 잔해에서 발견된 주검들을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다. 카나(레바논 남부)/AP 연합
생존자인 아브라힘 살후브는 “폭격 후 연기가 자욱한 데다 어두워 새벽까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며 “우리는 다른 이들을 도와줄 수 없었다”고 울부짖었다. 티레에 있던 국제적십자가 참사 소식을 들은 시각은 첫 폭격이 있은 지 6시간 뒤인 오전 7시였다. 하지만 적십자는 이스라엘군이 도로 곳곳을 폭격하는 바람에 카나마을까지 가는 데 먼길을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고 신문은 전했다. 30일 밤, 60구 이상의 주검이 폐허에서 발견됐으며, 그 중 34명은 어린이였다고 신문은 보도했다. 이 참사의 현장에서 살아남은 것은 오직 8명 뿐이다 티레의 한 병원으로 옮겨진 생존자 누르 하셈(13)은 “자고 있는데 폭탄이 우리에게 떨어졌다”고 사고 당시를 기억했다고 〈타임〉이 전했다. 누르는 폭탄이 터진 뒤 12살,7살,9개월 된 세 남동생들을 보지 못했다며 울기 시작했다. 또다른 생존자이자 장애인인 모하메드 살후브(41)는 〈타임〉 취재진에게 누르의 동생들이 모두 숨졌다고 작은 소리로 귀띔했다. 모하메드 눈에서도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도 6살난 딸과 여동생, 남동생을 잃었다. 30일(뉴욕 현지시각)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카나마을 학살에 대해 ‘극심한 충격과 비통함’을 느낀다는 내용의 의장성명을 채택했다. 하지만 이스라엘을 비난하는 내용은 어디에도 없었다. 이스라엘군은 헤즈볼라가 카나에서 로켓을 발사했기 때문에 폭격했고 그 건물에 민간인들이 있는지 몰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카나마을 주민인 핫산 파라즈는 “헤즈볼라는 카나마을에 들어오지 않았다”고 말했다고 〈뉴욕타임스〉가 30일 보도했다. 박현정 기자, 외신종합sar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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