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째 가뭄 동북부 1500만명 생계위협·가축도 폐사
‘아프리카의 뿔’이라고 불리는 동북아프리카 지역의 유목민들이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유목 생활은 지속될 수 없다”= 유엔 추산으로 1500만명에 달하는 이 지역의 유목민들은 4∼5년째 계속된 가뭄으로 생계를 위협받고 있다.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가뭄이 이어지면서 사하라 사막 남부지역으로 사막화가 확대된 탓이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케냐의 마사이족이 목축을 할 수 있는 땅을 찾아 케냐 북동부에서 남쪽인 나이로비까지 먼 거리를 이동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7일 보도했다. 지난 4월에는 동북아프리카 유목민 800만명이 가뭄으로 생존에 위협을 겪었고, 당시 이 지역 가축의 70%가 폐사했다고 유엔 인권관련 보도매체 <아이린(IRIN)>이 보도했다. 가뭄 주기마저 짧아지고 있어, 생존 위기가 2년 내에 또다시 닥칠 것이라고 <인디펜던트>가 전했다.
온난화로 가뭄주기 빨라지고
분쟁 · 유행병으로 무역도 막혀
신분 파악 안돼 정부서도 소외
일부 전문가들은 이 지역 유목민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아예 삶의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난 4월 유엔이 발간한 보고서는 “유목민은 주기적인 가뭄에 따라 이동 생활을 하고 시장에서 가축을 거래하는 등 생활방식을 발전시켜왔다”며 “그러나 군사적 충돌과 강화된 국경 경비 때문에 가축 판매가 힘들게 되면서 이 방식은 파괴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의 동북아프리카 담당 발레리 줄리안드는 “유목 생활은 더이상 지속될 수 없다”며 “(그래서)구호 단체들이 유목민에게 농작법을 가르치고 있으나, 이 프로그램은 저항에 부딪친 상태”라고 말했다. 케냐북부 유목민단체 일원인 모하메드 압디 엘미는 “목축 생활은 실험이 아니라 수세기 동안 지속된 생활방식”이라며 “우리는 이런 방식이 지속되어야 한다고 믿는다”라고 말했다고 <아이린>이 전했다.
정부 정책에 소외된 유목민들= 인도주의단체 ‘옥스팜’의 리차드 그란은 <인디펜던트>와 인터뷰에서 “도로가 부족해 가축을 옮길 수 없으며 종종 정부가 가축 거래를 허락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1997년 케냐, 에티오피아, 소말리아 지역에서 유행병인 리프트벨리피버(RVF)가 발병한 뒤 이 나라들로부터 가축 수입을 전면 금지하고 있다. 이 나라들은 한때 중동에 가축 수백만 마리를 수출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그란은 또 유목민에게 닥친 어려움으로 정치적 대표성이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유목민들은 투표를 하지 않으며, 신분증도 없으며 인구조사의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며 “정부는 이들에 대해서 잘 모르며, 파악하려는 노력도 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부족 간 갈등도 유목민의 생활을 위태롭게 하고 있다. 부족들은 서로 연락을 하려 하지 않는데다 충돌도 자주 발생한다고 <인디펜던트>는 분석했다. 유목민들은 비옥한 초지를 찾아 이동하는데, 두 부족이 같은 장소를 두고 겨루는 일이 발생하면 폭력사태로 번질 위험이 있다.
생존에 대한 위협이 커지면서 자구책도 모색되고 있다. 지난 7월에는 에티오피아 보라나 목초지에서 케냐, 탄자니아, 소말리아, 수단 등 18개국 60개 부족의 유목민 대표 350여명이 모여 무역 증진 등 생존을 위한 회담을 벌였다고 <데페아(DPA)통신>이 보도했다. 이 회담에는 14년간 충돌로 수천명을 죽음으로 몰고간 수단과 에티오피아 지역의 로우족과 지카니누에르족도 참여했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