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의 고향인 티크리트 외곽의 알아우자 마을에서 31일 주민들이 그의 무덤에 몰려들어 눈물을 쏟고 있다. 티크리트/AP 연합
최후진술 무시·영미 개입된 ‘안팔작전’은 재판 종료도 안돼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이 처형된 30일은 시아파 주도의 이라크 정부나 미국한테 ‘최선의 택일’이었다. 해를 넘기지 않고 그를 제거한데다, 수니파의 희생제 시작일(시아파는 31일)을 고름으로써 이라크 수니파의 ‘기’를 꺾으려는 의도까지 담겼으니 말이다.
이런 정치적인 고려는 2003년 12월 붙잡힌 후세인의 재판 과정에도 내내 작용하면서 공정성과 중립성을 훼손하는 무리수를 낳았다. 1월에는 물러난 주심판사가 “시아파 정치세력이 재판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다”고 폭로했고, 후세인의 변호인 세명이 피살당했다.
최종심인 항소심은 50여일 만에 끝났고, 피고인의 최후진술도 없었다. 확정판결일로부터 100시간도 지나지 않아 형을 집행한 것은 민주주의를 표방한 나라에서는 보기 어려운 사법관행이다. 이라크 헌법에 규정된 대통령·부통령의 사형 집행 재가가 필수적인지를 두고 법원과 법무부 사이에 엇갈리는 시각이 나왔는데, 집행 이후에도 이에 대한 설명이 없다. 이라크에서는 미군 침공 뒤 사형제가 폐지됐는데, 2004년 6월 후세인의 재판 개시를 앞두고 부활한 것도 국제인권단체 등의 비난을 샀다.
이런 점 때문에 유엔 법관독립성 특별보고관은 후세인이 독립적·중립적 재판을 받을 권리를 박탈당했다고 지적했다. 미국 <보스턴글로브>는 법원 신축과 집단매장지 발굴, 판사 훈련 등에 미국 정부가 1억2800만달러를 지출해 이라크 쪽 부담액(900만달러)을 크게 웃돌았다고 31일 보도했다. 또 수백명의 미국 국무부·법무부 직원들이 증거조사와 법률자문 등에 동원돼, 미국이 후세인 재판을 진행한 것과 진배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편, 후세인이 1988년 10만명이 넘는 쿠르드족이 희생된 ‘안팔 작전’을 두고도 재판받는 과정에서 처형당해, 진실 규명 기회가 사라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후세인은 148명의 시아파 주민들이 처형당한 ‘두자일 학살’이라는 상대적으로 가벼운 사건으로 재판받고 처형됐다. 이 때문에 이란-이라크전에서 후세인을 지원하고 쿠르드족 학살에 사용된 화학무기 등을 댄 미국과 영국의 부담을 덜려는 것이 아니었느냐는 의혹도 나오고 있다.
이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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