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장관, 만찬장 연주자 의상 구실로 퇴장
28년만의 회동 사실상 무산, 이란이 거부
28년만의 회동 사실상 무산, 이란이 거부
“앗살람 알라이쿰(신의 평화가 당신에게)”(마누셰르 모타키 이란 외무장관)
“헬로, 당신 영어가 내 아랍어보다 나은데요”(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
4일(현지시각) 이집트 이라크지원국제회의의 오찬 회견장. 최대 관심사였던 미국과 이란의 외무장관 회동은 이렇게 끝났다.
이날 저녁 만찬에서 주최측 이집트는 라이스 국무장관 맞은 편에 모타키 장관의 좌석을 마련했다. 모타키 장관은 만찬장에서 여성 바이올린 연주자의 의상이 이슬람 규율에 어긋난다며 아예 자리를 떠버렸다고 <에이피>(AP) 통신은 전했다. 이로써 미국의 대중동 정책과 이라크 상황을 변화시킬 카드로 주목받았던 28년 만의 미-이란 외무장관 회담도 무산됐다.
미국은 여러 차례 ‘이란과 대화를 원한다’는 신호를 보냈지만, 이란은 현 상황에서 미국과의 직접 대화를 피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고 <비비시>(BBC) 방송은 보도했다. 이란 지도부는 강경파와 온건파 사이에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이 올 초 이라크 아르빌에서 붙잡아간 5명의 이란 ‘외교관’ 문제도 걸림돌이었다.
라이언 크로커 이라크 주재 미국 대사와 압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무 부장관이 잠깐 이라크 문제를 얘기한 게 전부였다. 라이스 장관은 기자회견에서 “이란 외무장관과 내가 만날 기회가 오지 않았을 뿐, 그 기회가 올 수도 있었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모타키 장관은 “미국은 이라크를 점령함으로써 생긴 문제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미국을 강하게 비난했다.
그러나 라이스 장관이 3일 왈리드 모알렘 시리아 외무장관과 30분간 만나 이라크 상황을 논의한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시리아를 ‘악의 축’으로 비난하고, 지난달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의 시리아 방문을 맹비난했던 부시 행정부가 시리아와 진지하게 마주 앉았기 때문이다.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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