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년만에 회담…미국 “필요한 조처 검토”
미국과 이란은 28일 27년 만에 대사급 공식 양자 회담을 열어, 이라크 정책을 두고 폭넓은 합의를 했다고 미국 쪽이 밝혔다.
이라크 주재 라이언 크로커 미국 대사와 하산 카제미 이란 대사는 이날 이라크 바그다드 특별 경계구역인‘그린존’의 이라크 총리공관에서 만나 이라크의 혼란과 폭력사태 해결 문제를 논의했다. 테헤란 미국 대사관 인질사건으로 1980년 4월 외교관계를 단절한 뒤 ‘앙숙’으로 대립해 온 두 나라의 외교사에서 역사적인 한 장으로 평가된다.
크로커 대사는 네 시간 남짓 계속된 이번 회담은 실무회담이었으며, 이라크 정책에 대한 폭넓은 합의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란이 자신과 미국·이라크가 참가하는 ‘삼각 안보 체제’ 설립을 제안했으며, 워싱턴에서 필요한 조처를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크로커 대사는 이란이 이라크 사태와 관련한 태도를 바꾸고 이라크 저항세력에 대한 무장과 재정지원, 훈련을 중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카제미 이란 대사는 2차 회담과 관련해 한 달 안에 양쪽이 만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회담은 이라크 문제에 한정됐고, 이란 핵 문제, 두 나라의 상대편 국민 억류사건 등 민감한 의제는 건드리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회담 담긴 드러나지 않은 의미는 적지 않다.
부시 행정부는 이란에 요구하던 양자 회담 요구조건을 모두 포기하고 이번 협상장에 나왔다. 이라크 문제 해결을 위해 이란과 대화하라고 권고한 이라크연구그룹(ISG)의 보고서를 수용한 것이다. 지난해 12월 이 보고서가 나왔을 때 조지 부시 대통령은 ‘이란이 테러리스트 지원을 중단하고, 민주적으로 정부를 선출해야’ 대화할 수 있다며 전제조건을 달았다. 이란의 우라늄 농축 중단도 조건의 하나였다. 이번 협상에 나서면서 미국은 이런 조건을 모두 거둬들였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 상황을 어느 정도라도 안정시키고 미군을 감축해야 할 상황이다. <뉴욕타임스>는 정치적 압력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부시 행정부는 내년 중반까지 이라크 주둔 미군을 현재 14만6천여명에서 10만여명으로 줄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자면 이웃 나라 이란의 협조가 절실한 상황이다. 이란도 핵 개발을 둘러싸고 보수파와 개혁파가 대립하는데다 경제제재로 어려움도 겪고 있다. 양국 모두 대화를 통한 돌파구가 필요하다.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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