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서방파 반다르 왕자, 영국 방산업체서 1조원 넘는 뇌물
영국 정부는 조사 중단 외압
영국 정부는 조사 중단 외압
무기와 왕자, 천문학적 뇌물이 얽힌 추문이 영국을 강타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국가안보보좌관인 반다르 빈 술탄 왕자가 유럽 최대 방산기업인 영국 비에이이(BAE)시스템즈로부터 지난 10여년 동안 10억파운드(1조8480억원)가 넘는 거액의 뇌물을 받았다고 <가디언>과 <비비시>(BBC) 등이 7일 보도했다. 영국 정부는 이를 알면서도 ‘국가 안보’를 이유로 정부기관의 조사를 중단시키는 등 사건을 은폐하려 했다고 이들 언론은 전했다.
사우디의 친서방 정책을 주도해온 반다르 왕자는 영국 역사상 최대 무기판매 계약(알 야마나)을 성사시킨 주역이다. 1984년 12월 마거릿 대처 당시 영국 총리는 미국 주재 사우디 대사였던 반다르 왕자를 만나 비에이이와 사우디의 무기판매 계약을 주선해 달라고 부탁했다. 반다르 왕자는 대처 총리의 보좌관이었던 찰스 파웰, 딕 에반스 비에이이 회장과 이를 논의했고, 85년 여름 대처 총리에게 파드 국왕의 친서를 전하고 거래를 성사시켰다. 비에이이는 사우디에 20년 동안 120대의 토네이도 전투기와 호크 훈련기, 각종 미사일 등 430억파운드(약 79조4657억)의 군사장비를 판매했다.
그 대가로 비에이이는 워싱턴에 있는 미국 리그스 은행의 반다르 왕자 비밀계좌로 석달마다 3천만파운드씩을 정기적으로 송금했다. 전체 뇌물 액수는 10억파운드를 넘는다. 반다르 왕자는 이 돈의 일부로 개인용 에어버스 항공기를 구입했다고 <비비시>는 전했다. 특히 알 야마나 계약서의 비밀 부속조항에 반다르 왕자에게 건네질 돈이 ‘마케팅 비용’ 명목으로 기재돼 있으며, 계약을 승인한 영국 국방부도 비자금과 관련된 사실을 모두 알고 있었다고 <가디언>은 보도했다.
‘아랍의 키신저’로 불리는 반다르 왕자는 사우디 국방장관인 술탄 왕자와 하녀였던 어머니 사이에 태어나 영국과 미국에서 공군 조종사 훈련을 받았다. 1983년부터 22년 동안 미국 대사를 지내며 석유업계 출신의 부시 대통령 일가와 끈끈한 관계를 맺어‘반다르 부시’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그는 백악관과 크로퍼드 목장을 자유롭게 드나들었고, 사우디가 영국·미국으로부터 대규모 무기를 수입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영국 정부기관인 중대비리조사청(SFO)은 2004년 이 뇌물 의혹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지만, 2006년 12월 조사는 돌연 중단됐다. 영국 정부가 수사 중단을 압박했기 때문이다. 사우디 정부는 수사를 중단하지 않으면 국교를 단절할 것이라며 반발했다. 토니 블레어 총리는 “비자금 수사는 영국과 사우디의 관계를 크게 손상시킬 것”이라며 조사 중단 결정을 내렸다.
이 보도가 나온 뒤 야당은 토니 블레어 총리에게 의회 차원의 전면 조사를 요구했다. 영국 국방부는 “사우디의 전투기 구매사업과 관련된 정보는 기밀사항”이라고 밝혔다.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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