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넘게 고단한 생존 투쟁을 해 온 팔레스타인이 자멸적 분열에 빠져들고 있다. 독립국가 건설 꿈도 점점 스러지고 있다.
팔레스타인 양대 정파 하마스와 파타가 유혈 분쟁을 벌이는 가운데, 파타 지도자인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은 14일 두 정파의 공동내각을 해산하고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하마스의 이스마일 하니야 총리는 아바스 수반의 조처를 일축했다. 하마스는 이날 가자지구를 장악했다고 선언했다. 지난 9일부터 시작돼 이미 110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교전의 결과다. 하마스 대변인 이슬람 샤하완은 라디오에 나와 “정의와 이슬람 통치의 시대가 왔다”고 선언했다고 <에이피>(AP) 통신 등이 전했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으로 수천년 살아 온 땅에서 쫓겨난 뒤, 그나마 남은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에 독립국을 세우려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상황이다. 팔레스타인 공보장관 무스타파 바르구티는 <비비시>(BBC) 방송에 “연립내각의 붕괴만이 아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전체가 무너지고 있다”고 말했다.
팔레스타인은 하마스가 다스리는 가자와 파타가 장악한 요르단강 서안으로 분열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아바스 수반의 조기총선 결정에 하마스는 강력히 반대한다. 반쪽 총선은 팔레스타인을 나눠놓게 될 것이다. 200만명이 서안에, 140만명이 가자에 산다. 하니야 총리는 “가자지구는 조국의 분리될 수 없는 땅”이라며 가자에 하마스만의 국가 건설을 일축했으나, 골은 깊어지고 있다. 파타는 서안으로 혼란이 번질 것을 우려해 하마스 무장세력 30~40여명을 체포했다. 가자에서는 하마스 무장대원들이 붙잡은 파타 무장세력 7명을 거리에서 처형하기도 했다고 <로이터> 통신 등이 전했다.
이런 분열에는 이스라엘의 강압과 미국의 중동정책, 팔레스타인의 빈곤과 갈등이 얽혀 있다. 파타는 93년 오슬로 협정에서 이스라엘과의 공존을 선언하고 94년 자치정부를 세웠지만,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통행을 가로막는 거대한 분리장벽만 건설됐다. 이스라엘 정착촌은 계속 확장됐다. 87년 이슬람주의 단체 하마스가 빈곤에 찌든 가자에서 결성돼 ‘대안’으로 성장했다. 지난해 총선에서는 압승을 거뒀다.
미국·유럽·이스라엘은 하마스가 ‘테러단체’라며 경제제재를 강화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생활은 마비됐고, 하마스는 난관을 뚫고자 지난 3월 파타와 공동내각을 구성했지만 서방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양쪽은 보안조직 주도권을 놓고 충돌했고, 미국과 이스라엘은 아바스 수반에게 6천만달러의 군사 지원금과 무기를 지원하며 분쟁을 키웠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양쪽을 분열시키는 정책을 계속할 태세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은 14일 아바스 수반과 통화하며 미국의 파타 지지를 거듭 강조했다. 장기적으로는 이스라엘이 하마스가 힘을 키우는 것을 저지하려 군사적으로 개입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서방은 파타가 통제하는 서안에는 제재를 완화할 뜻을 내비치고 있다. 외부와 철저히 차단된 가자 주민들은 유엔의 식량 배급마저 끊긴 상황이다. 가자 공무원인 가산 하솀(37)은 <뉴욕타임스>에 “여기가 이라크인 것 같다. 자비도 없다. 우리에겐 미래가 없다”고 말했다.박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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