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 위험 지역
탈레반 속셈 뭘까
6년 동안 계속된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을 비웃듯 세력을 재결집한 탈레반들은 외국인 인질 납치를 ‘일석삼조’의 무기로 활용하고 있다. 자신들의 주장을 세계에 알리고 철군 여론을 불러일으키며, 붙잡힌 동료들의 석방을 이끌어 내려는 전술이다.
이번 한국인 납치에서도 탈레반은 처음엔 ‘한국군 철수’를 앞세웠고, 21일부터는 ‘탈레반 수감자와 맞교환’도 요구하고 있다. 한국인 23명이 탈레반에 납치됐다는 소식과 이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철군해 달라”는 피랍자 가족들의 울부짖음이 그대로 전해졌다. 한국인들이 납치되기 하루 전 자국인 2명이 납치된 독일에서도 철군 여론이 불붙고 있다.
여러 정황에 비춰 핵심 요구는 ‘수감된 탈레반 요원과 한국인 피랍자의 맞교환’으로 판단된다. 지난 3월 이탈리아 언론 <라 레푸블리카>의 다니엘레 마스트로자코모 특파원을 납치했을 때도 애초 이탈리아군 철수를 요구하다 탈레반 수감자 석방으로 석방 조건을 바꿔 이를 성사시켰다. 이탈리아 정부가 아프간 정부를 끈질기게 압박해 결국 20일 만에 탈레반 수감자 5명을 마스트로자코모 특파원과 맞교환했다.
탈레반의 세력이 곳곳에 미치고 있고, 정부의 통치력은 허약한 아프간의 현실 때문에 석방 협상도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아프간 정부의 통치력은 수도 카불 등 일부 지역에만 미친다.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의 별명은 ‘카불 시장’이다. 치안 불안과 암살 위험 때문에 수도 카불 바깥으로 나가는 일이 드물기 때문이다.
카불 밖 남동부 주요 지역은 탈레반이 장악한 채 북쪽으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고, 다른 지역은 군벌과 부족 세력의 영향권이다. 18일 독일 엔지니어들이 납치된 와르다크주나 한국인들이 납치된 가즈니주는 카불에서 170㎞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지만, 시골 지역은 대부분 탈레반이 장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탈레반의 조직 체계도 매우 복잡하다. 2001년 말 미군의 침공으로 탈레반 정권이 무너진 뒤, 탈레반 최고 지도자인 물라 오마르 등 무장세력 수천명이 국경 너머 파키스탄의 북와지리스탄이나 발루치스탄의 험준한 산악지대로 들어가 은신했다. 오마르는 현재 파키스탄 산악지대에서 ‘지하드’(성전)를 지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지역별로 군 사령관을 임명했다. 지난 5월 나토군과의 교전에서 사망한 물라 다둘라가 아프간 군사작전을 총지휘했고, 아크타르 모함마드 만수르가 칸다하르 지역을 관할하며, 압둘 라힘이 헬만드 지역을 관할하고 있다고 <비비시>(BBC)는 전했다. 최근에는 탈레반에 동조하는 지방 군벌이나 부족 세력도 탈레반에 합류하고 있어, 지휘체계와 분파가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박민희 김순배 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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