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감자 석방 열쇠 쥐고도 ‘협상불가’ 원칙 고수
동맹국 희생자 더 늘땐 지켜만 보기 어려운 상황
동맹국 희생자 더 늘땐 지켜만 보기 어려운 상황
아프가니스탄에서 납치된 한국인 인질 1명이 살해됨에 따라, 포로 석방의 열쇠를 쥔 미국의 태도가 바뀔지 주목된다.
현재 석방 협상에서 탈레반 강경파의 핵심요구는 탈레반 수감자 석방이다. 석방 대가 지불은 한계를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수감자 석방의 공식적 창구인 아프간 정부는 탈레반과의 전쟁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의 ‘재가’를 받지 않을 수 없다. 아프간 정부는 지난 3월 피랍된 이탈리아인과 포로 5명을 맞교환했다가 미국의 호된 비난을 받은 전례도 있다.
아프간 정부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은 아프간에 1만5000명을 파견해 국제안보지원군(ISAF)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이들이 없다면 아프간 정부의 존립 자체가 어렵다. 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은 미국의 절대적 지원으로 2004년 대통령에 오른 인물이다. 미국은 해외원조에 의존하는 아프간에 140억달러가 넘는 천문학적인 돈을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수감자 석방이라는 조건을 들어주기 위해선 미국 설득이 관건이다. 백종천 청와대 안보실장은 25일 성명에서 “아프간 정부를 비롯한 ‘유관국’들과 긴밀히 협조” 하겠다며 미국의 협력을 얻기 위한 노력 강화를 에둘러 표현했다.
미국 또한 인질 살해 이후 곤혹스런 처지로 몰리고 있다. 동맹국의 인질이 죽어나가는 상황을 외면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테러범과 협상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깨기도 어렵다. 계속 ‘강건너 불구경’하는 것으로 비친다면 한국의 반미감정이 커질 수 있다. 자칫 사태가 악화되면 가뜩이나 뜨거운 철군론에 불을 붙일 수 있다.
미국은 극도로 신중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미 국무부 고위 당국자는 25일 미국이 이번 사태에 대해 언급을 자제하는 것은 “인질사태에 대한 제3국의 언급이 어떤 영향을 끼칠지 예측불가능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 정부와) 분명히 연락을 계속하고는 있지만, ‘공조’란 단어는 쓰고 싶지 않다”며 단어 하나하나에까지 신경을 썼다. 숀 매코맥 미 국무부 대변인은 인질 살해 소식이 전해진 이날도 “한국 정부의 인질 석방 노력을 지지한다. 즉각 석방돼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원칙론만을 되풀이했다.
미국은 공식적으로 한국 정부와 거리를 두고 물밑 지원을 하는 방식이 현재로선 최상의 선택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추가 희생자가 발생하고 상황이 더욱 악화된다면, 미국이 마냥 원칙만 앞세우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
김순배 기자, 워싱턴/류재훈 특파원
marco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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