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배형규(42) 목사가 희생된데 이어 31일 심성민(29)씨가 아프간 무장세력에 의해 살해됐다는 소식이 정부에 의해 공식 확인되자 피랍자 가족들은 충격과 당혹감 속에 말문을 닫고 심리적 '공황상태'에 빠졌다.
피랍자 가족들은 피랍 13일째, 피랍소식이 들린지 12일째로 접어들면서 석방 낭보는 들리지 않고 2명이 희생되자 그동안 한 두마디씩 꺼내던 말문도 닫은채 넋을 잃은 표정이다.
특히 남자 인질이 우선 살해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자 남자 피랍자 가족들은 더욱 애를 태우고 있으며 알자지라 방송에 공개된 동영상을 본 가족들도 안도는 커녕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가자 애끓는 심정으로 석방협상에 희망을 걸고 있다.
◇"성민이를 살려주세요" = 심씨의 어머니 김미옥(61)씨는 이날 오전 4시 40분께 경기도 분당 피랍자 가족모임 사무실에 도착해 "살려주세요. 왜 죽여요. 빨리 살려주세요. 우린 못살아요"라고 오열했다.
외부와 접촉이 차단된 피랍자 가족모임 사무실에서 다른 가족들의 위로를 받으며 뉴스속보를 주시하던 김씨는 오전 7시45분께 끝내 탈진해 사무실 옆 휴게실로 옮겨져 링거주사를 맞았다.
심씨 가족 10여명은 노심초사하며 마지막 희망을 잃지않으려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러나 이날 오후 정부가 심씨의 피살사실을 공식확인하자 가족은 "운구 후 곧바로 장례를 치르겠다"는 대체적인 장례계획을 말한 뒤 휴게실 안에서 침통한 표정으로 회의를 열고 있다.
◇남자 인질 가족들 '안절부절' = 탈레반 대변인을 자처하는 카리 유수프 아마디는 남성 인질을 추가 살해했다고 주장한 뒤 30일 밤(현지시간) 연합뉴스와의 간접 통화에서 "(협상이 안되면) 남성 인질을 먼저 순차적으로 살해할 것"이라고 말했다.
피랍 봉사단원중 남자는 배형규(42), 심성민(29), 제창희(28), 서경석(27), 고세훈(27), 유경식(55), 송병우(37)씨 등 7명이며 이 중 배씨와 심씨 등 남자 두 명이 희생됐다. 이에 따라 나머지 피랍자 가족들은 안절부절 상태다.
제창희씨 누나 제미숙(45)씨는 "알자지라가 공개한 인질 동영상에서 오른쪽 끝에 베이지색 바지와 긴팔 셔츠를 입은 남자가 서 있는데 얼굴은 안나왔지만 동생 창희가 확실하다"고 말했다.
미숙씨는 또 "무장세력이 피랍자들을 살해하면서 동생도 위협을 받았을텐데 가족으로서 아무 역할을 할 수 없는 것이 안타깝다"고 애끓는 심경을 토로했다.
송병우씨의 서울 동작구 자택에서 전화를 받은 한 가족은 "죄송하다. 지금 심정으로는 할 말이 없다"고 전화를 끊었다. 송씨가 부지점장으로 있는 재정컨설팅회사측도 언론 취재를 거부하면서 무사귀환만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전했다.
유경식씨의 이웃 김모씨는 "남자들이 자꾸 살해돼 걱정이 된다. 아프간 사람들과 친해지려고 수염까지 기르고 가신 분인데..."라고 안타까워했다. 유씨 가족들은 피랍 후 집에 들어오지 않고 있다.
서경석.명화씨 남매의 아버지 서정배(57)씨도 피랍자 가족모임 사무실에 나왔지만 피랍초기와 달리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일체 말을 하지 않고 있다.
◇동영상 공개.."안심 못해" = 30일 일본 NHK와 국내언론에 한국인 인질의 전화 인터뷰 내용이 보도됐을 당시 가족들은 "납치세력의 전략에 휘말릴 수 있어 육성공개에 반응하지 않겠다"며 애써 담담한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육성이 공개돼 비교적 안전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심성민씨가 살해되자 심씨와 함께 있던 다른 가족들은 충격에 빠졌다.
동영상이 공개된 후 한지영(34)씨의 언니는 "동생이 억류 상태인데 아무 말도 못하겠다. 엄마가 상황을 계속 주시하고 있다"고만 말했다.
두번째 희생자가 나오자 이날 분당 피랍자 가족모임 사무실 주변에는 뉴스통신사인 AP, 로이터를 비롯 일본 TBS, 니혼TV, 대만 기독교 굿TV, 독일 ARD방송 등 외국 언론사 기자들이 찾아와 현장 리포트까지 하며 취재경쟁을 벌였다.
강병철 한미희 기자 soleco@yna.co.kr (성남=연합뉴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