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희생자가 발생했을 때 노무현 대통령은 특사외교로 대응했다. 국내 언론이나 전문가들은 지난 주말을 협상의 고비로 봤다. 금요일 오후 현지에 도착한 백종천 청와대 안보정책실장은 일요일 오후에야 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을 만났다. 탈레반 쪽도 특사파견을 환영하면서 월요일 오후까지를 협상시한을 설정했다. 이틀 더 협상을 연장해 달라는 아프간 정부쪽의 요구는 거부됐다. 화요일 새벽 1시 신성민씨가 추가 희생됐다.
이제 아프가니스탄 한국인 인질사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두가지 점이 강조될 필요가 있다. 인질범들에게 인질은 수단이다. 인질은 생명이 아니다. 인질의 생명은 목적달성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다른 하나는 아프가니스탄이 전쟁 중이라는 것이다. 2001년 10월 미국의 아프간 침공 이래 아프간이 전쟁 중이었다는 것과 다르다. 올 봄부터 탈레반 반군의 대공세와 이에 맞선 미국 등 나토군의 소탕전으로 탈레반 정권 붕괴 이후 아프간에서는 연일 사망자가 속출하는 최악의 폭력 사태가 빚어지고 있다. 인질 사태는 그 와중에 있다는 것이다. 추가 희생이 나오고 인질사태가 12일째로 접어들며 장기화되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다.
탈레반쪽은 탈레반 나름대로 인질을 죽인 이유들이 있다. 첫번째는 세그룹으로 분산돼 있던 인질 가운데 아프간 정부가 몸값을 내세워 8명의 석방을 추진한 데 대한 카리 유스푸 아마디로 대변되는 탈레반 중앙의 보복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25일 밤 배형규 목사가 살해되고 나머지 8명의 추가 살해 위협 앞에 이 시도는 좌절됐다. 두번째 신성민씨 살해는 특사 외교의 ‘실패’에 대한 보복으로 보인다. 특사가 왔음에도 아프간 정부가 자신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청와대 천호선 대변인은 31일 납치단체의 ‘만행’을 규탄했다. 그는 납치 단체가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요구”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수감자 맞교환은 “우리 정부가 해결할 수 있는 수단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대목에 대해선 정부가 그런 얘기를 할 필요가 있었는가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청와대의 천 대변인이 거리낌 없이 “우리가 아프간 정부의 결정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수단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 것은 정부도 탈레반의 요구에 동의하지만 우리는 할 수 없다는 것으로 비칠 우려가 있다.
이런 상황이라면 아프간 정부가 맞교환을 계속 거부할 경우 탈레반은 또 다시 아프간 정부를 비난하며 한국인 인질을 살해하게 되는 일이 재연될 것이다. 탈레반 반군 수감자가 한국의 수중에 있지 않는 한 한국정부는 지켜볼 수밖에 없다. 탈레반과 아프간 정부의 대결 속에서 한국인 인질이 차례로 죽어가는 최악의 상황이다.
탈레반이나 아프간 정부에게 인질 23명과 21명은 큰 차이가 없을 지 모른다. 그러나 한국정부는 달라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추가인질의 희생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두가지 분명한 원칙이 천명될 필요가 있다고 주문하고 있다. 하나는 인질이 살해되지 않는다는 조건에서만 협상은 가능하다는 것이다. 탈레반의 목적은 인질 살해가 아니다. 그들도 수감자 석방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선 협상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다른 하나는 인질이 계속 살해되는 상황을 탈레반의 만행 때문으로만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아프간 정부도 그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 아프간 정부는 물론이고 미국을 포함한 우방국 어디도 한국정부가 한국인 인질들의 생명을 지켜야 하는 절대적 책무가 있다는 사실에 동의해야 하며, 이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천 대변인의 말을 보면 정부가 나서서 이제 해결방법은 인질과 수감자 맞교환이라고 ‘천명’한 셈이 됐다. 그렇다면 아프간 정부가 ‘수감자 석방 방식’에 동의한다고 밝혀야 한다.
협상이 불가능하다면 남은 선택은 구태여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 경우 논리적으로만 놓고 보면 아프간 정부가 한국인의 생명에 책임을 지지 못한다면 이스라엘이 했던 것처럼 우리 스스로 나설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또 탈레반이 원치 않는 추가 전투병 파병으로 맞대응 할 수도 있다. 무고한 민간인 살해라는 만행에 맞서 이들을 법정에 세우 올바른 원칙을 확립하는 건 필요하다. 물론 현재 그럴 가능성은 커 보이지 않는게 사실이다.
강태호 기자 kankan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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