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국제 중동·아프리카

한국정부 ‘조용한 대응’ 변화 조짐

등록 2007-07-31 19:33수정 2007-07-31 23:27

탈레반·아프간 정부·미국 등에 공세적 호소
“원치 유연하게 적용하는 게 인도적 관점” 강조
정부 ‘만행규탄’ 성명 의미

대통령 특사 파견을 통한 총력외교에도 불구하고, 한국인 인질 심성민씨가 추가로 살해된 뒤 시름이 깊어진 정부의 대응 기조에 미묘한 변화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정부는 그동안 아프가니스탄 정부와 긴밀한 협력을 유지하며 조용한 외교적 해법에 주력해 왔다. 협상 진행상황은 물론 탈레반의 요구 조건에 대해서조차 명확한 확인을 피해 왔다. 탈레반이 동료 수감자와 한국인 인질 맞교환을 핵심 요구로 내걸었지만, 테러단체와 협상하지 않는다는 국제사회 관례와 아프간 정부의 난감한 처지를 고려해 될수록 조용히 사태를 풀어간다는 전술적 판단이 작용했던 것이다.

그러나 추가 희생자 발생으로 특사외교가 사실상 한계에 부닥친 31일, 청와대는 공세적이고 공개적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납치단체의 ‘만행’을 규탄하는 정부 성명을 통해 “납치단체는 우리 국민의 석방 조건으로 수감자 석방과 맞교환을 요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천 대변인은 “이 문제는 우리 정부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며 “우리가 아프간 정부의 결정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수단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라고 솔직히 말했다. 정부도 탈레반 요구를 들어주고 싶고 그런 노력을 했지만, 아프간 정부를 강제할 능력이 없다는 자기 고백인 셈이다.

이는 수감자 석방을 요구하는 탈레반한테는 한국 정부가 아프간 정부를 강제할 현실적 수단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하면서, 동시에 아프간 정부에는 수감자 석방에 좀더 전향적으로 접근해 달라는 압박의 성격을 지닌 것으로 보인다. 천 대변인은 추가설명에서 “아프간 정부의 어려움을 이해하지만 (수감자 석방에) 더 유연하고 적극적으로 대처해 주기를 기대하고, 다른 한편 무장단엔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한계를 인식시켜 주려는 것”이라고 정부 의도를 비교적 분명하게 밝혔다.

천 대변인은 또 “인질문제 해결 과정에서 국제사회가 견지해 온 원칙적 입장을 잘 알고 있다”면서도 “그러나 소중한 민간인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이런 원칙적 입장을 유연하게 적용하는 것이 인도적 관점에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우리는 국제사회가 무고한 민간인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이런 노력을 지지해 줄 것은 호소한다”고 덧붙였다.

여기엔 아프간 정부에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미국정부의 유연한 태도를 촉구하는 뜻이 담긴 것으로 보인다. ‘테러단체와 협상은 없다’는 원칙론을 고수하는 미국을 국제사회 여론을 통해 압박하려는 것이다. 천 대변인은 기자들과의 질문답변에서 “미국이 의도적으로 협조하지 않았다고 생각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그는 그러면서 “필요할 경우 미국 등과의 협력을 좀더 다각화할 계획을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좌시 않겠다” 속뜻?

군사작전 배제원칙 흔들리나

탈레반 무장세력이 한국인 인질 1명을 추가로 살해하면서, 최악의 상황에 대비한 인질 구출 작전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심성민씨의 피살에도 정부는 일단 무력 사용을 배제한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심씨 피살 전 정부는 “피랍자들을 무사하고 안전하게 돌아오도록 하려면 무장단체와 평화적인 접촉과 대화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군사작전에 대해 분명히 선을 그었다. 그러나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은 31일 “인내심을 갖겠다”고 전제하면서도 “또다시 우리 국민의 인명을 해치는 행위가 일어난다면 이를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 분위기가 이전과 달라졌음을 내비친 것이다.

문제는 군사적 수단의 유용성이다. 군사적 선택지는 상당한 인질의 희생을 각오해야 한다. 탈레반은 이미 아프간 정부군과 나토군의 기습작전에 대비해 인질을 분산·수용한 뒤 수시로 이동시키고 있다. 전광석화처럼 인질을 구출해내지 못한다면 참담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군사적 선택은 이미 2명을 살해한 탈레반의 향후 행동에 달린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탈레반이 이슬람 율법을 어기면서 여성 인질들까지 무리하게 죽이지는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탈레반이 한국인 여성 인질을 한명이라도 죽인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정부로선 인질 전체를 다 죽일 수도 있다는 도발적 신호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여성 인질의 살해가 협상을 통한 해결의‘마지노선’인 셈이다. 탈레반이 남성 인질을 더 살해하는 경우에도, 국내에서 ‘반탈레반’ 여론이 고조되고 정부 안에서 강경한 기류가 지배해 군사작전 가능성이 높일 전망이다.

이용인 신승근 기자 yyi@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국제 많이 보는 기사

트럼프 ‘호주 관세 예외’에 일본 “우리 철강·알루미늄도” 기대감 1.

트럼프 ‘호주 관세 예외’에 일본 “우리 철강·알루미늄도” 기대감

‘누가 뭐래도 내가 실세’...트럼프 앉혀두고 오벌오피스에서 브리핑 2.

‘누가 뭐래도 내가 실세’...트럼프 앉혀두고 오벌오피스에서 브리핑

트럼프, 요르단 국왕에 대놓고 “미국이 가자지구 가지겠다” 3.

트럼프, 요르단 국왕에 대놓고 “미국이 가자지구 가지겠다”

D-30, 트럼프 철강 관세 실행 …BBC “한국도 영향 불가피” 4.

D-30, 트럼프 철강 관세 실행 …BBC “한국도 영향 불가피”

“이혼해도 가족”…데미 무어, 치매 브루스 윌리스 매주 찾아가 5.

“이혼해도 가족”…데미 무어, 치매 브루스 윌리스 매주 찾아가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