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아프가니스탄 경찰이 30일 카불에서 가즈니로 향하는 도로에서 자동차 승객들을 수색하는 동료들 옆에서 보초를 서고 있다. 카불/AFP 연합
‘동료석방’ 탈레반 요구 눈감도 ‘돈문제’ 몰아가
여성납치 비난·군사작전 언급…탈레반 자극해
여성납치 비난·군사작전 언급…탈레반 자극해
탈레반과의 협상을 도맡은 아프간 정부의 협상 의지에 대한 회의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탈레반 수감자 석방은 없다”는 방침이 쉽게 바뀌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기는 했지만, 협상 진행과 상황 전달 과정의 투명성에 고개를 갸웃거릴 만한 대목들이 발견되고 있다.
탈레반이 요구하는 석방 대상자 명단을 놓고 아프간 정부와 탈레반은 상반된 주장을 펴고 있다. 사건 초기에 수감자 8명의 명단을 제시했던 탈레반은 아프간 정부의 얘기를 듣고 명단을 수정했다고 밝혔다. 아프간 정부가 미군과 영국군 수용시설에 일부가 있다고 해, 카불 외곽의 폴리차르키 교도소 재소자들로 새 명단을 작성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프간 정부 쪽에서는 여전히 일부 수감자를 미군이 데리고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어느 한쪽은 거짓말을 하는 셈이다. 탈레반이 협상에 혼선을 주려고 거짓말을 할 수도 있지만, 이에 대해 아프간 정부는 명쾌한 설명을 내놓지 않았다. 아프간 정부가 탈레반의 요구가 무리라는 점을 부각시키려고, 이들의 석방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대외적으로 강조했을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탈레반 대변인을 자처하는 카리 유수프 아마디는 지난 28일 <데페아>(dpa) 통신에 “아프간 정부는 (우선 석방을 요구한 8명의) 수감자들이 미군 수중에 있다거나 그들이 아주 고위급 인사들이라는 변명을 하고 있다”며 “이건 사실이 아니며, 그들은 평범한 탈레반 조직원들”이라고 주장했다.
아프간 정부가 이번 사태의 본질을 ‘몸값’ 쪽으로 몰고가려 한 측면도 있다. 협상 초기 아프간 정부 협상단 관계자는 <교도통신>에 탈레반이 피랍자와의 전화통화 대가로 10만달러(약 9200만원)를 요구한다고 말했다. 아마디는 곧장 이를 부인했고, 한국 정부도 이 요구를 전달받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아프간 정부 협상단은 이후에도 일본 언론을 통해 우선 석방 대상인 피랍자 8명에 대한 거액의 몸값이 지불됐다고 전하는 등, 돈으로 문제가 해결될 것같은 언행을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탈레반은 동료 석방만이 자신들의 요구라는 공식 주장을 분명히 하며, 돈을 바라고 납치를 저질렀다는 아프간 정부의 주장에 강한 불쾌감을 드러냈다.
아프간 정부는 29일부터는 탈레반의 여성 납치가 이슬람 전통에 반한다고 비난하기 시작했다. 일면 여성 피랍자들을 풀려나게 하려는 전략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몸값을 부각시킨 데 이어 여성 납치를 거론한 것은 ‘이데올로기 싸움’에서 탈레반을 누르려는 의도로도 읽힌다. 내전의 상대방으로 ‘불구대천의 원수’인 탈레반의 이름에 먹물을 튀기는 게 우선이고, 피랍자 구출은 뒷전으로 밀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낳게 한다. 여기에 아프간 정부의 계속되는 군사작전 가능성 언급 등 강경 일변도 대응이 탈레반을 자극했을 가능성도 있다.
무엇보다 지난 25일 배형규 목사가 ‘8명 우선 석방설’이 나돌 무렵에 살해되고, 31일 밤 협상시한이 이틀 연장됐다는 아프간 정부 관계자의 말이 나온 뒤 심성민씨가 살해된 점은 아프간 정부의 협상에 물음표를 달게 한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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