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와야 할‘ 아프간 피랍 21명 = 모든 어버이의 눈물은 한 빛깔이다. 처절한 피눈물이다. 전쟁 통에 젊은 자식을 잃은 아프가니스탄의 어버이도, 이라크의 무슬림 부모들도, 그리고 이번에 탈레반에 자녀들이 납치된 한국의 부모들도, 젊은 목숨을 더 끊어서는 안 된다는 애절한 호소는 한 빛깔이다.
‘돌아와야 할’ 아프간 피랍 21명
헐벗고 피흘리는 땅, 아프가니스탄으로 봉사활동을 떠났다가 피랍된 23명의 사람들. 가족과 직장 동료, 학교 선후배들은 그들을 이웃의 가난과 아픔을 보듬는데 인색하지 않았던 ‘착한 사마리아인’으로 기억한다. 피랍 이후 이들의 위험지역 방문을 둘러싼 논란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잇단 ‘비보’ 속에서 ‘살아 돌아오기’를 바라는 온 사회의 소망은 더욱 간절해지고 있다.
남 돕기 위해 간호사 · 미용사 자격증도 따 서명화·경석 남매
“말이 안 통하는데 어쩌겠어요. 그저 그곳 아이들을 보듬어 주는 게 일이에요. 품어주면 서로 통하는 게 있어요.” 서명화(29·여)씨는 이렇게 말하며 아프간으로 떠났다. 그의 아버지 서정배(57)씨는 “아프간으로 떠나던 당시 딸의 웃는 모습이 지워지지 않는다”고 했다.
명화씨는 애초 대학에서 중어중문학을 전공했으나 그만두고 아픈 이들을 돕고 싶다며 포천중문의대 간호학과에 다시 입학했다. 그는 분당 서울대병원 신경과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다 아프간으로 떠나기 전 직장을 그만뒀다. 그를 연구원으로 데리고 있었던 배희준 교수는 “맡은 일은 무서울 만큼 철저히 하면서도 항상 웃는 얼굴로 사람을 대하는 단정한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갓 결혼한 새댁인 명화씨는 4년 전부터 우즈베키스탄, 우간다, 인도의 두메들만 찾아다니며 봉사활동을 해오다 올해는 아프간을 선택했다. 명화씨의 어머니는 “명화가 비록 몸은 힘들어도 젊은 시절 봉사를 통해 얻는 것이 참으로 많다며 남동생에게 이번 아프간 봉사활동 참여를 권했다”고 전했다.
명화씨와 함께 피랍된 동생 경석(27)씨는 아프간에 가는 경비를 마련하려고 보름 정도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미용자격증을 딴 경석씨는 손에 붙은 가위질 솜씨로 아프간 사람들의 머리를 단정히 깎아줄 예정이었다. 아버지는 “미용을 하는 경석이는 혼자는 못 가니까 이번에 여러 사람이 갈 때 한번 가보고 싶다고 했다”며 “싸움을 하러 간 것도, 돈 벌러 간 것도 아닌데 왜 내 자식들을 붙잡고 있는지 …”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명화씨의 단짝 친구인 이주연(27·여)씨도 친구와 함께 아프간에 몸이 묶였다. 포천중문의대 동문인 두 사람은 동아리 활동도 함께할 정도로 마음이 잘 맞았다고 한다. 분당 차병원 간호사였던 이씨는 휴직 기간 중 짬을 내 아프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하어영 노현웅 기자 haha@hani.co.kr, 유동엽 인턴기자(서울대 국어국문학과 대학원)
유경석씨 암 극복 뒤 “새 삶 나누고 싶다”
이영경씨 연수 미루고 “너무 보람된 일” “막내동생 창희는 철이 없어요. 월급을 타면 트럭에 쌀을 싣고 다니면서 남부터 도와주는 애였지요.” 아프가니스탄 현지에서 영어통역을 맡았던 제창희(38)씨의 누나 제미숙(45)씨는 “철없이 착하기만 한 동생에게 닥친 현실을 믿고 싶지 않다”고 했다. 이번 여행에서 통역을 맡은 이는 제씨 말고도 유정화(39·여), 이선영(37·여), 한지영(34·여)씨 등이 있다. 지난 28일 <로이터> 통신과 전화통화를 했던 유씨는 서울의 한 학원에서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다 이번 여행에 합류했다. 아이들을 좋아하는 유씨는 지난해에도 아프간 봉사활동을 다녀왔지만 “아프간 아이들이 너무 불쌍하다”며 이번 봉사단에서도 통역과 아이들 교육을 맡았다. 대학에서 아동심리를 전공한 김지나(32·여)씨 역시 아이들한테 둘러싸여 사는 것을 좋아했다. 김씨의 오빠는 “쾌활한 성격에 평소에도 유치원 아이들을 보면 마냥 좋아해, 아이들 가르치는 것을 즐겼다”고 말했다. 김씨는 아프간으로 떠나기 전 건강이 좋지 않았지만, 아버지에게는 심려를 끼칠까봐 어디로 간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경기 성남에서 피아노 학원을 운영하는 차혜진(31·여)씨는 피아노 음악을 통한 심리치료를 하는 게 꿈이다. 피아노를 전공한 차씨는 대학 1학년 때부터 건반에서 손을 떼는 틈틈이 인도·우간다·중국 등을 돌며 봉사활동을 펼쳤다. 성남의 한 개인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는 이정란(33·여)씨는 부모님이 걱정할까봐, 동생 이정훈(28)씨에게만 ‘의료봉사’를 떠난다는 사실을 귀띔해 줬다고 한다. 지난해 아프간에 다녀왔던 이성은(24·여)씨는 “올 여름엔 아프가니스탄 땅을 밟고 돌아왔습니다. 우리나라의 1960~70년대를 보는 듯한 이 땅은 우리와 참 많이 닮은 나라에요”라며, 아프간에 대한 애정을 자신이 다니는 경기 구리의 영락교회 인터넷 게시판에 올려놓았다. 이번에 출국하던 날에도 자신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사랑하는 아프간 땅’이라며 애정을 표현해 놓았다. 학원 국어교사 출신인 김윤영(35·여)씨는 알뜰한 주부이자 스스럼 없는 이웃집 아줌마였다. 성남 분당에서 피자집을 운영하며 아홉살 난 아들과 여섯살 난 딸을 키웠다. 샘물교회 홈페이지에는 김씨가 올린 ‘초등학교 1학년 가방 물려주실 분’, ‘네발 자전거 갖고 계신 분’ 등의 글들이 남아 있다. 서로 물건을 돌려 쓰는 일은 더불어 사는 이웃 사이엔 당연한 일이었다. 교회에서도 김씨는 살림꾼으로 통했다고 한다. 컨설팅 회사에 다니며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던 송병우(33)씨 역시 바쁜 틈에도 휴가를 내 아프간행 비행기에 올랐다. 송씨는 주변 사람들의 크고 작은 일을 꼼꼼하게 챙겨주는 “잔정이 많은 사람”이었다고 교회 사람들은 전했다. 한때 가수를 꿈꿨던 고세훈(27)씨는 아프간으로 떠나기 전 자신의 블로그에 “(아프간에서) 돌아오면 다 같이 여름여행 가자”는 글을 남겼지만, 여행은 한참 뒤로 미뤄졌다. 그는 아프간으로 떠나며 “내가 힘든다고 안 가면 누가 어려운 이웃들을 도와주겠느냐”는 말을 했다고 가족들은 전했다. 고씨의 어머니는 “아프간으로 가기 전 아들이 ‘세상일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어머니에게 더 잘해드려야 할 것 같다’고 말해 나무랐다”고 말했다. 2년 전 아프간에 다녀온 뒤 지난해 12월부터 아프간에 머물며 교육·의료 활동을 해 온 이지영(36·여)씨의 오빠 이종환(39)씨는 “동생이 지난해 말 아프간으로 떠나면서 ‘2004년에 다녀온 적도 있고 안전하니 걱정하지 마라. 아이들 잘 가르치고 오겠다’며 떠났다”고 전했다. 박혜영(32·여)씨 역시 지난해 1월부터 아프간에서 의료·영어교육 활동을 해 왔다. <알자지라> 방송에 수척해진 얼굴이 비친 임현주(33·여)씨는 국내에서 간호사로 일하다 의료전문 봉사단체인 에이엔에프(ANF)를 통해 3년 전 아프간으로 들어갔다. 지난 6월 양팔이 없는 아프간 10대 소녀의 수술을 주선하려 소녀와 함께 한국에 들어왔다가 다시 아프간에 갔다. 애초 9월까지 국내에 머물 예정이었지만, 이번에 납치된 일행이 아프간으로 간다는 소식을 듣고 안내자 일을 맡아 일정을 당겨 출국했다. 김남일 노현웅 기자 namfic@hani.co.kr 유동엽 김현우 오혜정 인턴기자
“따뜻한 마음은 통역이 안되나요”
평소 사랑 실천하던 사람들 뜻밖 ‘비보’
가족·이웃들 ‘무사히 돌아오라’ 기도 탈레반이 인질로 잡고 있는 이들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은 유경식(55)씨는 “현지인들과 친하게 지내려고” 아프간 사람들처럼 수염을 길렀다 한다. 그는 아프간에서 살며 그 곳 사람들의 삶 속에 스며드는 ‘진짜 봉사’를 꿈꿨다고 주변 사람들이 전했다. 유씨는 유머가 넘쳤고, 2005년 갑상선암에 걸렸지만 이를 이겨냈다. ‘두 번째 삶’을 남을 위해 쓰고 싶다며 아내와 두 딸을 설득해 젊은 사람들이 주축이 된 이번 아프간행에 합류했다. 피랍자 가운데 막내 이영경(22·여)씨는 어학연수를 다녀오라는 아버지의 권유를 뿌리치고 아프간으로 떠났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는 이씨는 지난해에도 인도로 봉사활동을 다녀왔다. 이씨의 어머니 김은주씨는 “학교 다니면서도 한 달에 한 번씩은 꼭 봉사활동을 나가는 아이였다”며 “인도를 갔다와서는 ‘너무나 보람된 일이었다’며 이번 아프간행을 졸랐다”고 말했다. 김씨는 “가지 말라고 말렸지만 딸이 ‘이번만 아프간에 갔다온 뒤 취직 준비를 하겠다’고 하도 졸라서 보냈는데 이게 무슨 일이냐”며 안타까워했다. 노현웅 최원형 기자 goloke@hani.co.kr
유경석씨 암 극복 뒤 “새 삶 나누고 싶다”
이영경씨 연수 미루고 “너무 보람된 일” “막내동생 창희는 철이 없어요. 월급을 타면 트럭에 쌀을 싣고 다니면서 남부터 도와주는 애였지요.” 아프가니스탄 현지에서 영어통역을 맡았던 제창희(38)씨의 누나 제미숙(45)씨는 “철없이 착하기만 한 동생에게 닥친 현실을 믿고 싶지 않다”고 했다. 이번 여행에서 통역을 맡은 이는 제씨 말고도 유정화(39·여), 이선영(37·여), 한지영(34·여)씨 등이 있다. 지난 28일 <로이터> 통신과 전화통화를 했던 유씨는 서울의 한 학원에서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다 이번 여행에 합류했다. 아이들을 좋아하는 유씨는 지난해에도 아프간 봉사활동을 다녀왔지만 “아프간 아이들이 너무 불쌍하다”며 이번 봉사단에서도 통역과 아이들 교육을 맡았다. 대학에서 아동심리를 전공한 김지나(32·여)씨 역시 아이들한테 둘러싸여 사는 것을 좋아했다. 김씨의 오빠는 “쾌활한 성격에 평소에도 유치원 아이들을 보면 마냥 좋아해, 아이들 가르치는 것을 즐겼다”고 말했다. 김씨는 아프간으로 떠나기 전 건강이 좋지 않았지만, 아버지에게는 심려를 끼칠까봐 어디로 간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경기 성남에서 피아노 학원을 운영하는 차혜진(31·여)씨는 피아노 음악을 통한 심리치료를 하는 게 꿈이다. 피아노를 전공한 차씨는 대학 1학년 때부터 건반에서 손을 떼는 틈틈이 인도·우간다·중국 등을 돌며 봉사활동을 펼쳤다. 성남의 한 개인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는 이정란(33·여)씨는 부모님이 걱정할까봐, 동생 이정훈(28)씨에게만 ‘의료봉사’를 떠난다는 사실을 귀띔해 줬다고 한다. 지난해 아프간에 다녀왔던 이성은(24·여)씨는 “올 여름엔 아프가니스탄 땅을 밟고 돌아왔습니다. 우리나라의 1960~70년대를 보는 듯한 이 땅은 우리와 참 많이 닮은 나라에요”라며, 아프간에 대한 애정을 자신이 다니는 경기 구리의 영락교회 인터넷 게시판에 올려놓았다. 이번에 출국하던 날에도 자신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사랑하는 아프간 땅’이라며 애정을 표현해 놓았다. 학원 국어교사 출신인 김윤영(35·여)씨는 알뜰한 주부이자 스스럼 없는 이웃집 아줌마였다. 성남 분당에서 피자집을 운영하며 아홉살 난 아들과 여섯살 난 딸을 키웠다. 샘물교회 홈페이지에는 김씨가 올린 ‘초등학교 1학년 가방 물려주실 분’, ‘네발 자전거 갖고 계신 분’ 등의 글들이 남아 있다. 서로 물건을 돌려 쓰는 일은 더불어 사는 이웃 사이엔 당연한 일이었다. 교회에서도 김씨는 살림꾼으로 통했다고 한다. 컨설팅 회사에 다니며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던 송병우(33)씨 역시 바쁜 틈에도 휴가를 내 아프간행 비행기에 올랐다. 송씨는 주변 사람들의 크고 작은 일을 꼼꼼하게 챙겨주는 “잔정이 많은 사람”이었다고 교회 사람들은 전했다. 한때 가수를 꿈꿨던 고세훈(27)씨는 아프간으로 떠나기 전 자신의 블로그에 “(아프간에서) 돌아오면 다 같이 여름여행 가자”는 글을 남겼지만, 여행은 한참 뒤로 미뤄졌다. 그는 아프간으로 떠나며 “내가 힘든다고 안 가면 누가 어려운 이웃들을 도와주겠느냐”는 말을 했다고 가족들은 전했다. 고씨의 어머니는 “아프간으로 가기 전 아들이 ‘세상일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어머니에게 더 잘해드려야 할 것 같다’고 말해 나무랐다”고 말했다. 2년 전 아프간에 다녀온 뒤 지난해 12월부터 아프간에 머물며 교육·의료 활동을 해 온 이지영(36·여)씨의 오빠 이종환(39)씨는 “동생이 지난해 말 아프간으로 떠나면서 ‘2004년에 다녀온 적도 있고 안전하니 걱정하지 마라. 아이들 잘 가르치고 오겠다’며 떠났다”고 전했다. 박혜영(32·여)씨 역시 지난해 1월부터 아프간에서 의료·영어교육 활동을 해 왔다. <알자지라> 방송에 수척해진 얼굴이 비친 임현주(33·여)씨는 국내에서 간호사로 일하다 의료전문 봉사단체인 에이엔에프(ANF)를 통해 3년 전 아프간으로 들어갔다. 지난 6월 양팔이 없는 아프간 10대 소녀의 수술을 주선하려 소녀와 함께 한국에 들어왔다가 다시 아프간에 갔다. 애초 9월까지 국내에 머물 예정이었지만, 이번에 납치된 일행이 아프간으로 간다는 소식을 듣고 안내자 일을 맡아 일정을 당겨 출국했다. 김남일 노현웅 기자 namfic@hani.co.kr 유동엽 김현우 오혜정 인턴기자
“따뜻한 마음은 통역이 안되나요”
평소 사랑 실천하던 사람들 뜻밖 ‘비보’
가족·이웃들 ‘무사히 돌아오라’ 기도 탈레반이 인질로 잡고 있는 이들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은 유경식(55)씨는 “현지인들과 친하게 지내려고” 아프간 사람들처럼 수염을 길렀다 한다. 그는 아프간에서 살며 그 곳 사람들의 삶 속에 스며드는 ‘진짜 봉사’를 꿈꿨다고 주변 사람들이 전했다. 유씨는 유머가 넘쳤고, 2005년 갑상선암에 걸렸지만 이를 이겨냈다. ‘두 번째 삶’을 남을 위해 쓰고 싶다며 아내와 두 딸을 설득해 젊은 사람들이 주축이 된 이번 아프간행에 합류했다. 피랍자 가운데 막내 이영경(22·여)씨는 어학연수를 다녀오라는 아버지의 권유를 뿌리치고 아프간으로 떠났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는 이씨는 지난해에도 인도로 봉사활동을 다녀왔다. 이씨의 어머니 김은주씨는 “학교 다니면서도 한 달에 한 번씩은 꼭 봉사활동을 나가는 아이였다”며 “인도를 갔다와서는 ‘너무나 보람된 일이었다’며 이번 아프간행을 졸랐다”고 말했다. 김씨는 “가지 말라고 말렸지만 딸이 ‘이번만 아프간에 갔다온 뒤 취직 준비를 하겠다’고 하도 졸라서 보냈는데 이게 무슨 일이냐”며 안타까워했다. 노현웅 최원형 기자 golok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