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 언론인 리포트]
탈레반과 타협 하더라도 ‘흡족한 결과’ 못 느끼도록
탈레반과 타협 하더라도 ‘흡족한 결과’ 못 느끼도록
<한겨레>는 장기화하는 한국인 23명 피랍 사태에 대한 입체적 보도를 위해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현지 저명 언론인에게 취재를 의뢰했다. 아프간 상황을 누구보다 면밀하게 추적해온 이들의 깊이 있는 보도는 이번 사태에 대한 독자들의 이해를 한층 넓혀줄 것으로 기대된다. 편집자
탈레반의 납치는 오랫동안 예견돼 왔던 사안이다. 탈레반 지도부는 올해 이탈리아 기자 석방의 대가로 얻어낸 탈레반 죄수 석방에 큰 만족감을 표시했다. ‘내·외국인 가리지 않고 되도록 많은 이들을 납치해 감옥에 있는 형제들을 풀어낸다’는 방침을 공개적으로 표명해왔다.
한국인 23명 납치는 탈레반의 납치사건 가운데 최대 규모다. 테러와의 전쟁 이후 이슬람권에서 벌어진 것 가운데서도 최대일 것이다. 그만큼 국내외적 반향은 크다. 아프간 정부 뿐 아니라 탈레반 쪽에서도 그 무게는 이제 서로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상승하고 있다.
그만큼 해결책 찾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일단 과거 납치사건의 해결방안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상황이 더 나쁘기 때문이다. 탈레반은 많은 외국인 인질을 납치했지만, 인질을 살해한 사례는 손에 꼽힌다. 반면, 이번 사건에선 2주도 되지 않아 인질을 두명이나 살해했다.
그렇다면 협상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까. 탈레반과 타협을 하더라도, ‘납치를 통해 원하는 것을 얻는다’는 그들의 느낌이 최소화하도록 해야 한다. 탈레반이 협상에서 흡족한 결과를 얻는다면, 이번 인질들이 풀려나더라도 향후 한국인 등 외국인을 모조리 납치할 게 자명하기 때문이다.
탈레반이 원하는 수감자 석방 문제에서도 △탈레반 고위층이 아닌 하위층 수감자 석방 △비전투요원·여성·미성년 죄수 석방 등 새로운 접근법을 고민해야 한다. 탈레반쪽에서 석방을 요구하는 수감자 명단을 여성으로 바꿨다는 얘기가 나오고, 여성 인질 2명이 아프다며 수감자 2명과 맞바꾸자고 말한 것은 일단 긍정적 신호로 보인다. 탈레반 쪽도 상대방에게 명분을 주기 위해 애쓰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문제는 아프간 정부와 탈레반 사이에 가로놓인 뿌리깊은 불신과 적대감이다. 이들은 지금 전쟁 중이다. 사실 아프간은 두개의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내부 갈등의 뿌리가 깊다. 탈레반의 주축을 이루는 남부 파슈툰족과 북부 타지크족 사이에는 남·북한과 비교할 수 없는 깊은 갈등이 존재한다.
한국인 23명의 납치 소식을 처음 들었을때 나는 무심결에 “세상에, 그렇게 위험한 일정을 강행했다니…”라고 소리질렀다. 아프간 기자로 수년간 전쟁을 취재한 내게도 카불-칸다하르 고속도로는 공포의 대상이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강도·납치가 보고되는 도로여서 현지인들도 되도록 비행기를 타고 이동하는 게 현실이다. 그런데 한국인들이 왜 그렇게 위험한 길을 선택했는지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기독교 신자인 이들이 선교 목적도 갖고 아프간에 왔다는 사실 또한 경악할 만하다. 탈레반에 부정적인 북부 파슈툰족도 이슬람 종교에 대해서는 탈레반 못지 않게 원칙적 태도를 취한다. 탈레반의 테러를 반대하는 이들도 기독교 선교사들에 대해서는 매우 감정적·부정적으로 반응한다. 한국 젊은이들은 기름통을 들고 불에 뛰어든 것이다.
정리/서수민 기자 wikka@hani.co.kr
* 파힘 다슈티(Faheem Dashty)는 누구 = 아프간 권위지인 <카불 위클리>의 편집장이다. 타지크족인 그는 2001년 9·11 이틀 전 아프간 북부동맹의 전설적 게릴라 지도자 아흐마드 마수드 장군를 취재하던 중 자살폭탄 공격을 받아 온몸의 90%에 화상을 입었으나 살아 남았다.
한국인 23명의 납치 소식을 처음 들었을때 나는 무심결에 “세상에, 그렇게 위험한 일정을 강행했다니…”라고 소리질렀다. 아프간 기자로 수년간 전쟁을 취재한 내게도 카불-칸다하르 고속도로는 공포의 대상이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강도·납치가 보고되는 도로여서 현지인들도 되도록 비행기를 타고 이동하는 게 현실이다. 그런데 한국인들이 왜 그렇게 위험한 길을 선택했는지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파힘 다슈티. 아프간 권위지인 <카불 위클리>의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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