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교환 관철’겨냥 ‘여성 위독’ 밝힌듯
‘여성 억압’으로 악명 높았던 탈레반이 현란한 ‘여성 인질 활용’ 전술을 선보이고 있다.
여성 인질들의 절박한 호소를 담은 육성과 동영상을 잇따라 공개한 탈레반이 이번에는 ‘여성 인질 위독설’과 ‘여성 인질 석방 가능설’을 동시에 들고 나왔다. 16명이나 되는 여성 인질을 납치한 초유의 사태를 최대한 활용해 수감자 석방이라는 쉽지 않은 목표를 관철시키려는 탈레반의 고심과 전략이 읽힌다.
“위독한 여성 인질과 2 대 2 맞교환”=탈레반 대변인 카리 유수프 아마디는 1일 <아프간이슬람통신>(AIP)에 “한국인 여성 인질 2명의 건강 상태가 매우 위독해 적절한 처방을 하지 않으면 병사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아마디는 “만약 탈레반 수감자 2명이 석방된다면 병든 여자 인질들을 풀어줄 것”이라며 새로운 ‘2 대 2 맞교환’ 제안까지 내놓았다.
열악한 환경과 공포, 오랜 억류 생활에 지친 인질들의 건강이 급격히 악화됐을 가능성은 있다. 김만복 국정원장이 1일 “인질들의 건강이 매우 좋지 않고 일부는 병원 진료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힌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반면 가즈니주 탈레반 지휘관 물라 압둘라는 이날 오후 미국 <시비에스>(CBS) 방송에 “인질 중 아무도 위독하거나 위중한 상태인 사람은 없다”고 전했다. 탈레반 쪽이 위독한 여성 인질과 맞교환을 제안한 것은 ‘약한 고리’인 여성 인질을 통해 아프간 정부에도 명분을 주며 수감자 석방의 돌파구를 찾으려는 의도로 보인다.
탈레반이 여성 인질들의 건강 악화설로 압박 전술을 펴면서, 한국 정부와 직접 협상을 계속 요구하는 것도 절박한 한국 정부의 처지를 활용하려는 의도로 분석된다. 가즈니주 탈레반 사령관 중 한 명인 물라 사비르 나시르는 31일 <시비에스>에 ‘아프간 정부의 방해로 그동안 한국 정부와 직접 협상하지 못했다’며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탈레반도 딜레마=탈레반에 정통한 파키스탄 일간 <더뉴스>의 라히물라 유수프자이 선임 에디터는 1일 <한겨레>에 “이번 인질 납치를 주도한 가즈니주의 탈레반 사령관 압둘라 잔은 반드시 수감자 석방을 달성해야만 하는 정치적 도박을 벌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프간 전통을 어기면서 이렇게 많은 여성 인질을 납치했고, 남성 인질을 2명이나 죽였는데 수감자를 한 명도 석방시키지 못한다면 그의 정치적 생명도 끝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번 납치에 직접 관여한 고위 탈레반 지휘관은 <시비에스>에 “우리 전략이 바뀔 수도 있기 때문에 (잠시나마) 인질들의 살해를 중단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탈레반이 여성 인질들의 석방도 검토하고 있다”며 “돈을 받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사령관이 “아프간 정부가 극도의 압력을 받아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그들을 계속 이런 상황에 몰아넣기 원한다”고 말한 것을 고려하면, 아프간 정부를 ‘지연 전술’로 압박할 의도로도 볼 수 있다.
당분간 인질을 살해하지 않고 지연 전술을 펴면서 한국 정부와 ‘인질-수감자 맞교환’ 협상을 본격적으로 벌이겠다는 뜻으로 분석된다. 최근 탈레반이 “인질들이 기독교 선교를 했다”고 강조하며 여성들도 특별 대우하지 않고 살해할 수 있다고 밝혔던 것을 본다면 교란작전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전날 심성민씨를 살해했던 탈레반이 유화적 태도로 돌변한 저의는 군사작전을 자초할 위험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박민희 서수민 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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