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이슬람사회가 아프가니스탄에서 납치된 한국인 인질들의 조속한 석방을 위해 한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정작 당사자인 탈레반은 꿈쩍도 않는 모습이다.
5일에도 세계최대 이슬람 국가인 인도네시아의 양대 이슬람단체와 팔레스타인의 최고이슬람기구가 한국인 인질의 석방을 촉구했지만 오히려 탈레반은 또 다시 인질 살해위협 카드를 들고 나섰다.
국제 이슬람사회가 수니파 무장세력인 탈레반에 어느 정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 찬물을 끼얹은 셈이다.
그러나 과거 사례를 살펴보면 탈레반이 국제 이슬람 사회의 여론을 무시한 것은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지난 2001년 집권 당시 탈레반은 우상숭배를 금한 이슬람법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인류문화유산인 바미얀 불상 폭파 방침을 발표한 바 있다.
이에 대해 당시 국제 이슬람 사회는 탈레반이 이슬람법을 문화유산파괴의 근거로 내세우는 데 대해 강력하게 반발하는 모습을 보였다.
상당수 주류 이슬람 율법학자들이 불상파괴에 반대의견을 냈고, 이란의 보수파 지도자 아크바르 하셰미 라프산자니 전(前) 대통령은 불상파괴 결정을 "추악한 짓"이라고까지 비난하기도 했다.
그러나 탈레반은 이 같은 국제 이슬람 사회의 권고에 꿈쩍도 하지 않고 불상을 폭파했다.
이 같은 상황이 벌어진 것은 탈레반이 주류 이슬람세력에 비해 상당히 극단적인 성향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탈레반은 집권 이후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를 앞세운 공포정치로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았다. 여성들의 사회 활동을 일절 금지하는 한편, 이슬람 식으로 수염을 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남성들을 투옥시켰을 정도였다.
또한 탈레반은 평소 다른 이슬람국가의 정부와도 원만한 관계가 아니었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국제 이슬람 사회를 무시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탈레반은 이슬람권의 보편적 이해를 얻는 데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극단적 교리해석이나 과격한 대외노선을 고수했을 뿐 아니라, 일부 탈레반 출신 전사들은 수단과 이집트, 사우디 아라비아 등지에서 반정부 무장활동까지 벌였다는 것이다.
탈레반 정권이 무너지기 직전 아프가니스탄과 외교관계를 유지한 국가가 인접국인 파키스탄밖에 없었던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그러나 탈레반의 수용 여부와 상관없이 국제 이슬람 사회는 여성납치를 비열하고 수치스러운 행위로 여기는 이슬람 전통을 들어 탈레반을 끝까지 압박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연합뉴스) kom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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