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국제 중동·아프리카

한국인 인질 사건으로 탈레반에 대한 파키스탄 여론 악화

등록 2007-08-06 07:33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한국인 여성들을 TV에서 봤습니다. 충격적이었죠. 탈레반이 그 여성들을 죽인다면 저항조직이 아닌 범죄집단이라는 이미지를 사람들에게 심어줄 겁니다."

아프간 무장조직인 탈레반의 한국인 인질 억류사태가 탈레반에 대한 무슬림들의 여론을 악화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이는 아프간과 2천여㎞의 국경을 공유하는 파키스탄에서도 확인됐다.

전체 인구(약 1억6천만명)의 97%가 무슬림인 파키스탄은 2001년의 9.11 테러 이후 정권 차원에서는 미국과 손잡고 탈레반 소탕전을 펼쳐왔다.

하지만 파키스탄 민중은 이슬람 원리주의에 입각해 외세와 맞서 싸운 탈레반에 상당한 지지를 보내왔다.

특히 엄격한 이슬람 율법을 좇는 탈레반의 모습은 서구의 문화 침투를 우려하는 보수적인 무슬림들을 열광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탈레반이 지난달 의료 봉사활동 등을 하러 아프간에 갔던 한국인 23명을 납치해 이 중 2명을 살해하고 나머지 21명의 생명을 위협하는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파키스탄 내 탈레반 지지여론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

탈레반의 한국인 인질 억류 사태가 18일째로 접어든 5일 파키스탄의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기자가 접촉해 본 무슬림들은 각기 다른 입으로 거의 똑같은 얘기를 했다.


탈레반이 옳지 않은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직업을 밝히기를 꺼린 피다 샤(45)는 한국인 납치 사건으로 파키스탄에서 탈레반에 대한 평가가 급속도로 나빠졌다고 말했다.

그는 "모든 사람이 한국인 여성들을 인질로 붙잡고 있는 탈레반을 나쁘게 말한다"며 이들을 석방하는 것이 이슬람 국가 창설을 지향하는 탈레반의 장래를 위해서도 좋을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그가 주위에 있던 5∼6명에게 현지어로 뭐라고 말하자 모두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동의를 표시했다.

무리에 있던 한 남자는 `탈레반은 한국이 미국의 동맹이고, 인질들이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를 들어 납치를 정당화하려 하는 것 같다'는 지적에 대해 "탈레반의 적은 미국이다. 미국인이라면 모를까, 왜 한국인을 납치하나? 그리고 어떤 종교를 믿는 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죄없는 사람을 죽여서는 안된다는 것이고, 그것이 이슬람의 정신이다"고 말했다.

무하마드 살림(55)은 택시기사다.

그는 라디오 뉴스로 매일 한국인 피랍 사건에 관한 소식을 듣고 있다며 "(그들이) 좋은 일을 하러 아프간에 가지 않았느냐. 그런 사람들을 납치해 해치는 것은 매우 나쁜 짓"이라고 탈레반을 비난했다.

MBA(경영학석사)를 따기 위해 공부하고 있다는 20대 청년인 술탄은 "누구나가 (탈레반을) 좋지 않게 얘기한다. TV에 인질들의 모습이 많이 나오면 나올 수록 탈레반의 주장에는 힘이 빠지고 이미지는 나빠질 것"이라고 말했다.

샤히드(34)는 "한국인 납치 사건은 탈레반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키웠다"고 밝혔다.

외교단지에서 근무하는 아미르는 아프간 접경 지대에는 탈레반을 심정적으로 지지하는 파키스탄 사람들이 많지만 한국인을 납치하고 살해한 것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이들 외에도 이슬라마바드의 많은 시민들은 기자가 한국인임을 의식해 겉치레로 하는 말인지는 모르지만 예외 없이 탈레반을 비난하고 한국인 인질들이 조속히 풀려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여기에다 탈레반의 한국인 납치가 이슬람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일이라는 지적도 많이 곁들여졌다.

이슬라마바드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는 탈레반의 한국인 납치에 대한 항간의 빗발치는 비난 여론이 탈레반을 압박해 인질들을 구해낼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http://blog.yonhapnews.co.kr/medium90/

박세진 특파원 parksj@yna.co.kr (이슬라마바드=연합뉴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국제 많이 보는 기사

트럼프 ‘호주 관세 예외’에 일본 “우리 철강·알루미늄도” 기대감 1.

트럼프 ‘호주 관세 예외’에 일본 “우리 철강·알루미늄도” 기대감

‘누가 뭐래도 내가 실세’...트럼프 앉혀두고 오벌오피스에서 브리핑 2.

‘누가 뭐래도 내가 실세’...트럼프 앉혀두고 오벌오피스에서 브리핑

트럼프, 요르단 국왕에 대놓고 “미국이 가자지구 가지겠다” 3.

트럼프, 요르단 국왕에 대놓고 “미국이 가자지구 가지겠다”

D-30, 트럼프 철강 관세 실행 …BBC “한국도 영향 불가피” 4.

D-30, 트럼프 철강 관세 실행 …BBC “한국도 영향 불가피”

“이혼해도 가족”…데미 무어, 치매 브루스 윌리스 매주 찾아가 5.

“이혼해도 가족”…데미 무어, 치매 브루스 윌리스 매주 찾아가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